한국일보

빨간 신호등

2004-08-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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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한인학교 동북부지역협의회장)

지난 해 여름, 7년만에 한국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나의 오빠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동생에게 여기 저기 안내하면서 크게 변화된 도시의 이모저모를 구경시켜 주고, 아직 생존해 계신 대소가의 어른을 찾아뵙는 시간을 가졌다.

변화가가 아닌 비교적 한적한 길을 건널 때, 빨간 신호등에 걸렸다. 그 분은 좌우를 돌아보고 통행 차량과 사람이 지나가지 않자 빨간 신호등을 그냥 통과하는 것이 아닌가.순간 나는 놀라서 왜 그러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여기서는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그냥 지나간다는 스스럼 없는 그 분의 대답이었다.


나의 오빠이기 전에 대학교수요, 의학박사로서의 사회의 가장 존경받는 분의 일이어서 순간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일이 미국에 돌아와서 1년이 지나는 동안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늘 생각 난다.

만일 내가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나도 빨간 신호등을 어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옛날 대학 다닐 때에 미국에서 유학하고 오신 사회학 교수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환경에 지배받는 존재이어서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우리 한국인도 좋은 토양에 옮겨놓으면 착하고 바른 시민이 되고 나쁜 환경에서 정착하면 일그러진 인격이 형성된다는 이
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했던 강의 내용이었다.

사실 빨간 신호 위반은 가장 작은 일 같으면서도 참으로 크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교통위반을 일삼는 행위가 나아가서는 총체적으로 나라를 좀먹는 부정부패로 이어지고, 심지어 우리가 먹는 음식에까지 인체에 해로운 물자를 넣어 만들어서 파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들이 다 해도 그것이 옳지 않는 일이면 나만이라도 하지 않는, 초등학생도 다 알고 지키는 일을 왜 어른들은 지키지 않을까.미국에서는 교육 과정에 도덕 과목이 없지만,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분명히 도덕과 국민윤리가 있는 한국에서 이런 작은 규칙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대내적인 국민의식 혁명, 의식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 번 길을 트니까 1년만에 또 고국을 방문하여 ‘재외동포 교육재단’에서 실시하는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북경 연길을 거쳐 백두산까지 관광하는 행운을 얻었다.

오랜만에 들러서 보는 크게 변화된 조국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1년만에 들러서 보는 조국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금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하지만 제발 빨간 신호 위반을 위시한 작은 규칙들이 잘 지켜지는 조국의 모습을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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