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 승리의 노래

2004-08-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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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테리·팍스는 캐나다의 젊은 영웅이다. 뱅쿠버의 브리티슈·컬럼비아 대학생이던 테리·팍스는 1982년 6월 29일 숨졌지만 그는 아직도 세계인의 마음에 살아 있다.

‘암’은 팍스의 오른쪽 다리를 빼앗아 갔고, 끈질긴 암 병균은 그의 가슴에 전이된 상태였지만 팍스는 큰 결심을 하였다. 그는 캐나다의 넓은 땅을 동쪽 끝에서부터 서쪽 끝까지 가로 지르는 희망의 마라톤을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장장 5,200마일의 거리인데 팍스는 3,000마일을 달려 선더 베이까지 다달았을 때 병이 심해져 쓰러진 것이다.


팍스가 아픈 몸으로 마라톤을 하게 된 까닭은 암 병원을 짓는 기금을 모으겠다는 일념에서였다. 자기처럼 암을 앓는 사람들을 고치는 병원을 짓게 하려는 팍스는 목발인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혼자 뛰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가 다리를 옮길 때마다 심한 고통이 따랐겠지만 기쁜 얼굴로 샛별같이 눈을 반짝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침내 팍스는 암 기금 모금을
위한 마라톤에 목숨을 바친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테리·팍스를 연상하는 랜스 암스트롱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텍사스에서 출생한 암스트롱은 2004 프랑스 도로 일주 사이클대회(Tour de France)에서 우승하여 대회 역사상 최초로 6연패의 위업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 경기는 프랑스 전역 21구간의 4,300여
km를 23일간 일주하는 것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대회이며,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굳은 의지를 겨루는 한마당인 것이다. 여기서 6연패를 거둔 암스트롱에 관한 이야기는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그것은 1996년 암스트롱이 고환암 진단을 받았고, 뇌와 폐에 많이 전이되어 한쪽 고환과 뇌조직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병 끝에 암이 완치되어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한 것이었다. 암스트롱은 1999년 이 경기에서 2연패 후 암스트롱 암연구재단을 설립하였고 암 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인간의 강인한 의지에 감명을 받는다. 때로는 인간답지 않은 사건들 때문에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며, 어떤 때는 자타의 여린 인간성, 나약한 행태에서 허무감을 느낄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약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놀랍도록 강한 면
이 있다. 거기에 암스트롱의 이야기에는 꼭 덧붙이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것은 지난 대회에서 암스트롱이 넘어졌을 때, 15초 차이로 2위를 달리던 독일의 안 율리히는 그가 다시 일어나 패달을 밟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고 한다. 스포츠정신 이상의 것, 인간의 아름다움
을 느끼게 한다.

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희망·용기·사랑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자기 자신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타인들을 돕고자 하는 큰 뜻을 알 수 있다. 테리·팍스와 랜스 암스트롱은 암
과 싸우면서 다른 암환자들을 위해 혼자 마라톤을 하거나, 암병원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른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준 점이다. 암을 완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힘을 주었다. 또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이다.

‘레모네이드 소녀’라고 불리던 알렉산드라 스콧이 숨졌다. 그녀는 겨우 8살인데 “레모네이드를 팔아서 그 돈으로 내 병원을 지을래요”라는 결심을 하고 집 앞에 마련한 가판대에서 4년간 레모네이드를 팔아 75만달러를 만들었다. 알렉산드라의 꿈은 100만달러의 암 연구기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테리 팍스, 랜스 암스트롱과 같은 꿈이다.나 자신은 비록 형용할 수 없는 병마에 시달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의 바탕은 사랑인 것이다. 이 마음을 실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이런 활동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삶에 지쳐서 세상을 등지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인간 사회는 아름답다고 하겠다.우리가 앞에 예거한 사람들과 동 시대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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