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현대판 자린고비

2004-08-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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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편집위원)

자린고비는 지나치게 인색하고 비정한 사람을 꼬집어 이르는 말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충북 충주에 사는 고비란 사람은 조선조 중엽에 실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제삿날마다 ‘지방’을 다시 쓰는 종이가 아까워서 한번 썼던 것은 태우지 않고 기름에 절여서 두고두고 다시 썼다하여 ‘절인고비’로 불렸는데 이 말이 변해서 ‘자린고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하도 반찬을 사 먹지 않으므로 이웃사람들이 ‘자린고비’의 마음을 떠보려고 몰래 새우젓 한 단지를 울안에 들여놓았다. 이를 본 자린고비는 “어어 밥 도둑놈이 들어왔네. 이 놈의 새우젓이 있으면 밥이 헤퍼서 못 써”하고 다시 집밖으로 내 보냈다고 한다.


하루는 ‘자린고비’가 국을 떠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며느리에게 국 맛이 좋은 까닭을 물었다. 며느리는 “오늘 반찬장수가 왔기에 사는 척하고 이것저것 만져만 보다가 그냥 보내고 손을 국솥에다 씻었더니 국 맛이 이렇게 좋네요”라며 자랑삼아 얘기를 했다.

자린고비는 오히려 노발대발을 했다. 칭찬을 들을 줄 알았던 며느리는 머쓱해졌다. 그러자 자린고비는 “살림을 그렇게 헤프게 하면 못 써. 손을 우물에다 씻어 넣었으면 두고두고 맛있게 먹을 게 아니냐”하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속담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옛날에는 자린고비 가운데 그 정도 수준 높은 사람들은 많았던 것 같다.신발이 닳는다고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는 벗어들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길을 갈 때 팔을 젓고 다니면 옷이 닳는다고 팔을 뒷짐을 지고 다닌 자린고비도 있었다니 말이다.

아이들이 남의 집에서 먹는 조기자반을 보고 먹고 싶다고 애원하는 바람에 모처럼 조기 한 마리를 사들고 왔지만 그 조기는 먹는 조기가 아니었다. 그 조기는 밥 한 숟가락 먹고 한번 쳐다보고 침 한번 삼키면 먹는 것과 같다고 하며 천장에 메달아 놓았다. 심지어 어느 날 밥 한 숟가락 떠먹고 그것을 두 번 쳐다봤더니 두 번씩이나 쳐다본다며 불효자라고 혼을 내 주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린고비 이야기가 아닌가.

이외에도 자린고비에 대한 화제는 끝이 없다.부채를 아끼느라 살을 두 개만 펴서 부치는 것도 모자라 부채가 닿을까봐 펼쳐서 얼굴 앞에 세우고 얼굴만 좌우로 흔들었다는 이야기. 된장항아리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파리를 보고 파리 다리에 묻은 된장이 아까워서 바가지에 물을 담아 가지고 파리를 붙잡아 그 다리를 씻으려고 쫓아간 자린고비 등등.

이처럼 자린고비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전해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근본이 자린고비와 같은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모든 사람이 돈을 물쓰듯하면 나중에는 거지들만 남게되므로 아끼고 절약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자신의 재물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을 수전노, 구두쇠, 노랑이 등 부정적인 의미로 불러왔다. 요즘에는 절약과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다보니 ‘자린고비’가 오히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오늘날 ‘자린고비’는 ‘옛날의 자린고비’와는 달라야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의 구두쇠는 굴비 먹기가 아까워서 무조건 천장에 매달아 놓고 쳐다만 봤지만 오늘날의 자린고비는 아낄 건 최대한 아끼면서도 꼭 써야할 곳에는 써야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아끼기만 하면 오히려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고 침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절약이란 소비를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올바른 소비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절약이란 무조건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아낄 건 아끼지만 쓸 곳에는 꼭 쓰는 것이다.

케인즈도 소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고 주장하면서 ‘소비가 미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오랫동안 한인경제가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인들의 위축된 소비심리가 주원인이라고 한다.

한인사회의 불황극복은 한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힘들다. 때문에 불황에는 안 쓰고 모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경기회복을 위해 쓸데는 써야하는 올바른 소비의식이 필요하다. 물론, 절약을 우습게 여기라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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