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간운세 밖에서 잊혀지며 사는 운세

2004-07-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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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나이를 먹어 늙는다는 일도 슬프지만 그보다도 더욱 슬픈 것은 잊혀져간다는 사실이다”명창 박초월 여사가 자신의 환갑잔칫날, 찾아온 손님 앞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 나이를 먹는다는 일은 슬프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슬픈 일은 잊혀져 간다는 사실이다.

신문에 나는 금주 주간운세에도 이제는 내 나이쯤은 끼워주지도 않는다. 무슨 의미일까? 늙어서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잊혀져 가고 있다는 내용일까?


심심풀이로 들여다보는 금주의 주간운세를 대할 때마다 입맛이 씁쓸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아직은 튼튼한 두 다리로 생생하게 가면서 작업을 하는 인생에 파업을 할 수도 없고… 내가 운세에 나오는 글귀를 유심히 보는 것은 내용 보다는 글 솜씨 때문이다.

불서에 나오는 글이라든가 성경의 구절, 또는 사주팔자나 정감록에 수록되어 있는 어휘등은 내용 자체를 가지고 따지기에 앞서 글 자체에서 훌륭하게 짜여진 문장이요, 상징과 비유와 은유에서 성공한 대단한 글들이다.

그래서 나는 불서라든가 성경, 또는 잡다한 운세꺼리의 잡서들에 많은 시간을 발라가며 읽
기를 좋아한다. 모래밭이 궁금하여 기어올라온 파도의 초점마저 소멸하여 힘 없이 되돌아
가고 세상살이가 궁금하여 세상에 온 모든 사람은 늘어가는 굵은 주름살을 햇볕에 말려 펴
보기도 전에 되돌아 간다. 돌고 도는 회전목마의 회전은 연습이 없는 직선의 우주법칙 행진
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사람이 죽으면 귀신(鬼神)이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귀신(歸神)이 된다고 웃으면서 말을 한다.
끝없이 던져주어도 또 남아도는 사랑과, 서러워도 반복되는 이별과 한, 기쁨과 슬픔을 경험
하지 않고서는 유행가 몇 가락이 자리를 펴고 울어대는 흥건한 쉰 목소리를 깔고 앉아 인생
을 되돌아 볼 수 없다. 그러니 못다한 것이 하도 많아 귀신(歸神)이 되어 나머지를 다 하겠
지.
황혼이 되면 푸르스름한 쪽빛이 부드럽게 유리창을 넘어온다. 바라볼수록 쓰다듬어 주고 싶
은 그 여린 빛, 시간이 남기고 간 인생의 그림자가 또한 그러한 것이겠지.
길을 가다 만나는 젊은 사람들의 눈빛은 어디를 가나 같다. 찾아다니는 그 눈빛은 그리움의
빛, 푸르름의 빛, 자유롭게 날고 싶은 자유의 빛, 그리고 사랑에 여위어 가고 싶어하는 가느
다란 빛 외에는 다른 색깔의 빛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 빛을 보고 있으면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를 등대불이 저고리를 벗어 한쪽 어깨에 걸치고 뛰는 모습, 마치 은색의 꽃잎을 앞 뒤 사방에 마구 뿌리면서 달리는 신혼마차의 신나는 흥분을 보는 듯 하다.

그렇다고 금주의 운세에 끼워주지 않은 나이들이 그간에 아이들이나 키우고 먹고 살기 위하여 세상에다 노동만을 뿌린 것은 아니다.
핏발이 서도록 피곤한 눈을 밝히며 살아온 길이라도 펼쳐놓으면 그 길을 따라서 또 다음 세대가 걸어온다. 밤이 지나면 아침 햇빛이 걸어 온다. 그리고 또 저문다. 아니, 내일 앞에 또 숨는다. 청천하늘이나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가지 않는 구름을 보았는가?부서지지 않는 파도를 보았는가?

한 점의 파도같은 인생 이야기가 뭉게구름이 되어 떠가지 않는다면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금주의 운세에는 팔짱을 끼고 끼지는 못했어도, 나이가 드니 바람소리에서 네가 들리고 흐르는 강물에서도 네가 들린다. 삶과 인생,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한도 들리고 눈빛도 들리
고 입술도 들린다. 창백한 뺨도 들리고 울음도 들린다. 풀잎도 들리고 춤추는 고뇌를 미친듯이 흔들며 울면서 합장하는 갈대의 염원도 들린다. 그것이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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