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수(保守)가 아름다운 이유

2004-07-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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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내과전문의)

흔히들 젊어서는 사회공산주의에 심취했다가 나이 들어서는 보수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는 말들을 한다. 그것은 학문적으로 비교 연구하기 위한 수단은 될 지언정 하나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사람으로 태어나서 일은 하지 않고 나눠 먹기부터 고함 지르고, 자유라든지 평등이라든지 인성(人性)을 중시하는 사상을 팽개치는 그런 곳으로 빠져들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동물도 광야에서 자유스럽게 놀다 붙잡아 길들일 때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을 보고 경험했을 줄 믿는다. 낚시꾼들에게 물어보고 야생말(馬)이나 코끼리를 포획하여 길들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유가 속박되었을 때 그들이 어떻게 인간에게 저항하는가를.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 ‘의사 지바고’를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줄 믿는다. 세계 1차대전에 패퇴한 당시의 러시아에는 먹을 것도 없는 가난과 극심한 사회 혼란은 혁명의 싹을 키워주었고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린 변혁은 있었지만 인성의 말살과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있었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것이 1917년 2월을 기점으로 하는 소위 러시아 혁명이다.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1890-1960)는 소설 ‘의사 지바고’(1957)를 통해서 당시의 정신적 혼란과 사랑을 적나라하게 그렸던 것이 1965년 영화화 되었던 것이다. 근 195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지만 공산주의 소련은 그 수상마저도 거절하게 강압했던 역사적 사실도 있다.

지금 한국은 모순의 사회로 비치고 있다. 내면적으로는 극심한 이념 투쟁에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색깔론으로 되받아 치는가 하면 내용에서는 친북 좌파적 노선을 걸으면서 실용주의나 리버럴(Liberal)이라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극좌로 분류되었던 현정권은 교양과는 거리가 먼 시장 잡배처럼 막말로 그들의 이념 전파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 주류를 바꾸기 시작하는 것을 보다 못해 이제는 이념 논쟁에서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발전되어 있다.

너무나 급격한 사회 변혁을 초래하고 있는 이런 정책들은 프랑스 혁명을 보고 실망한 정치철학자인 ‘에드먼드 버커’(1729-1797)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을 중시하고 변화는 천천히, 최소화 하면서 안정에 기초를 두고 튼튼한 국방에 외교를 강조하는 보수적 이념에 매료되는 이유가 그가 지향하는 요체이기 때문이다.

별놈의 보수를 갖다 대어도 보수는 변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하는 것은 무식이 극에 달하고 무지의 소치라는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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