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I Love New York

2004-07-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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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관)

나는 막내가 5살 되던 해로부터 해마다 여름이면 휴가나 연휴를 온 식구들과 함께 캠핑장에서 보내듯이 살아왔다. 이 때는 한국에서 부모님들이 막 이주해 오셨던 때라 아버지께서는 풍요로운 농촌 풍경과 잘 보존된 미국의 자연을 경탄하며 동행하셨다.

뉴욕 주변에는 아름다운 산하와 풍요로운 자연이 보존된 캠핑장이나 공원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다. 대서양을 낀 긴 해변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하는 포코노 지역이나 캐츠킬 지역이며 허드슨 강변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림같은 천혜의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 뉴욕이다.


허드슨강변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의 교정에서 강을 내려다 보라. 온 세상의 풍상을 다 씻어줄 듯 싶은 확 트인 전망! 이 세상에 어디 이런 명당이 또 있을까 싶다. 예로부터 뉴욕이 자리하게 된 연유를 읽을 수 있다.

나 역시 농촌 출신이라 캠핑을 나가게 되면 천막을 치고 손에 흙을 묻히며 사는 생활이 이만 저만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한번은 부모님을 모시고 롱아일랜드 사운드로 나가는 낚시배를 탄 적이 있다. 이때 아버지께서 동행한 나의 처남에게 하시던 농담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네 천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가?” 대답이 궁해 어물대고 있는 처남에게 “천당이란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하시면서 이 천혜의 아름다운 정경을 경탄하셨는데 안타깝게도 이듬해에 이런 천당같은 곳을 떠나 정말 그곳으로 가시었다.

막내가 열살쯤 되었을 때였다. 내 친구 중에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도무지 시골생활이라면 불편하다는 선입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시형 친구가 있다. 생각이 이렇다 보니 캠핑을 다니는 나를 늘 사서 고생하고 다닌다며 웃기는 사람으로 보는 친구다. 막내와 동갑 나이인 그의 아들이 우리가 캠핑을 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어찌나 부러워하는지 친구의 허락을 얻어 그 아이를 같이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주말이 끼인 날 이 친구가 아들 걱정이 된 나머지 캠핑장까지 찾아온 일이 있었는데 도착하자 마자 맨 먼저 하는 일이 시골길을 오느라 먼지가 뽀얗게 덮힌 차를 닦느라 정신이 없었고 흙을 묻히며 천막생활을 하는 우리를 무척이나 동정하여 혀를 차며 돌아갔다.

나는 이후로도 십여년을 더 캠핑장을 다니다가 어느해 뉴저지 먼 시골이지만 캠핑장 보다 더 훌륭한 아담한 호수가에 있는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연중무휴로 내내 캠핑같은 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곳이다. 집의 뒷마당이 호수라서 마당 끝에 서서 낚시를 던지면 되었고 새벽부터 새 소리에 잠이 깬다. 이후부터 캠핑을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

시골 생활이라면 질색하던 이 친구는 내가 이곳으로 이사온 지 지금 15년이 넘었지만 뉴욕에서 먼 시골이라 그런지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고 여전히 시골에 사는 나를 동정하고 있는 듯 하다. 오히려 나는 흙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 친구를 늘 동정하고 있다.

내 막내는 맨하탄에서 태어나 맨하탄에서 자란 탓에 행여 메트로폴리탄 밖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이런 친구같이 메마른 도시형 인간이 될까 무척이나 걱정했었다. 그러나 지금 직장인이 되어 다시 맨하탄에 살고 있지만 철이 든 지금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정서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 있어 일찍부터 시골을 다니던 캠핑이 그의 정서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
으로 보인다.


뉴욕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을 생각해 보자. 뉴욕은 세계의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주변의 이런 비할 데 없이 풍요로운 자연의 아름다운 보고를 끼고 있다. 이런 복된 자연을 접어두고 도시에만 파묻혀 살고 있다니 분명 이 사람은 동정 받을만한 불쌍한 친구임에 틀림 없다.

나는 추운 겨울날씨를 피한다며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이사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뉴욕의 기후, 여름이면 견디기 어려운 더위도 있고 겨울이면 감당하기 힘든 추위와 많은 눈이 쌓여 고생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힘든 겨울이 풀리면서 도로변을 노랗게 물들이는 개나리가 봄을 알리고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산과 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변하는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뉴욕, 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 복된 산천인가?

도시의 번거로움이 싫다고 뉴욕을 떠나 오스트렐리아로 이민갔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 온 사람이 한 말이 있다. There is no other place like New York than New York! 뉴요커는 뉴욕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I Love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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