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는 마음 받는 마음

2004-07-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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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화(롱아일랜드)

애지중지 키워온 장성한 자식에 의해 아버지가 생명을 잃은 한인가정의 엄청난 슬픈 사건이 실린 사회면의 기사를 접하니 착찹해진다.
자식에게 지나칠 정도로 극성스러운 우리 민족의 정서가 빚은 비극의 단면이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은 자식의 행복이 곧 부모의 행복이라고 믿는 것일게다. 그러한 나머지 최고의 교육을 시키고 싶어하고 더러는 버겁게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게 되고 우리 민족의 고질병인 일류대 병도 앓게되는 것이다.


문제는 주는 부모 마음과 받아들이는 자식 마음이 얼마나 효과적인 상호 작용을 하느냐이다. 그렇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시간적,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실이고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관계악화 일로까지 가게 되는 갈등의 불씨를 지피게 된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어렸을 땐 내 자식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인 걸로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뒤돌아봤을 때 엄청 다행인 것은 그 착각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품안에 끼고 있던 큰아이가 공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의 차이점을 보고 월등함과 우월함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아이의 능력은 배제된 채 내 의도대로 작품(?)을 만들어 반사영광을 누려보려고 동분서주했던 어리석은 한 시절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원해진 부부관계, 어려워진 경제사정 등등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가슴으로 다독거리는 허심탄회한 관계가 그들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결실은 서로에게 가족이라는 소중한 관계를 인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도 극성스런 한인부모 중 한 사람인데 한발 물러섬이 어찌 쉬웠겠는가. 하지만 자식은 절대 부모 의지대로 움직여주는 개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터득한 순간 갈등의 불씨는 사그라진다는 사실이다.

자식의 나이가 몇이든 간에 인격적인 대접을 해주는게 중요한 사실이라는 걸 우리 부모들은 인지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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