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정일의 통일 계획

2004-07-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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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정(회사원)

학생이 시험장에서 정답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를 정확히 분석 이해해야 하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선 올바른 진단이 앞서야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한국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선거운동의 막바지 때 소위 한국의 최고 기자들을 만난다는 관훈클럽의 정치포럼에 초대됐을 때 기자들로부터 너무나도 당연하고 예측되는 질문을 받았었다.

첫째는, ‘왜 대통령에 출마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관과 사회관, 그리고 통치관을 털어놓는 대신 ‘나는 어릴 때 꿈이 대통령 한 번 꼭 해보는 것’이었기에 출마했다는 답을 했다.


둘째는 ‘만일 당선된다면 경제정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따로 경제정책을 세워놓은 것은 없고 당에서 세워놓은대로 해나갈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 최고 기자들은 이런 기막힌 현문우답을 분석 비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고 그가 이미 당선이라도 된 것 같이 눈도장 찍기에만 바빴었다.

끝내 그는 당선되었고 어릴 때 품고있던 인간적인 야망 때문에 권력의 칼을 잡은 후엔 미래지향적으로 국가를 건설해 가기 보다는 ‘역사 바로세우기’ 등을 앞세우고 과거를 파헤치는데 몰두했다. 또 개인의 쌓인 원한을 풀어나가는데 집착했고 자신의 말 대로 모르는 ‘갱제’ 때문에 IMF를 몰고 왔었다.

임기를 마친 후 결산한 그의 최대 업적은 중앙청을 허물
은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닐지 모른다.
한편으로 현직의 노대통령은 선거운동의 막바지에서 상대 후보에게 ‘그러면 그것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얘기가 아닌가?라고 질타했었다. 말을 뒤집어 보면 ‘나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과 전쟁은 안하겠다’는 말이 된다.

대통령의 가장 큰 임무가 국토방위와 경제적 부흥
으로 국민을 잘 먹여 살리는 것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들인 한국민들이 국토방위를 안 하겠다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것이다.

더더욱 불안한 것은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군대를 시찰하고 난 후 ‘막상 전쟁이 나도 우리에겐 작전 지휘권이 없다’고 불평했었다. 즉 현재의 한미 연합사령부의 작전지휘권을 이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수상인 고이즈미가 만나본 김정일은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은 나같은 사람도 이쯤 되면 김정일의 통일 시나리오를 쉽게 읽어볼 수 있다.

한국민들이나 정치인들이 남북 관계에서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북한에도 한국에서와 같이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하나의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김정일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며 그는 곧 국가요, 법이다. 공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지만 조선이라는 명칭 이외는 모두가 반대로 적혀있는 셈이 된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제주의’이며 ‘인민공화국’이 아니
라 ‘김정일공화국’이다.


그 밑에서 조직에 얽매여서 핍박받고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동족이 아니라도 동정이 간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김정일로부터 주권을 찾은 후에나, 즉 주민들의 의사대로 최고통치자를 바꿀 수 있을 때 남한과 통일 논의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통일 논의는 김정일의 지배 하에서 함께 굶고 핍박받고 세계에서 고립되자는 얘기나 다름없는 것이다.

요즈음 부쩍 통일이 곧 되는 것 같이 설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 통일이 되어가고 있는지나 아는지 궁금한 것이다.

현재 이 시간에도 뒤에서 분주하게 무대장치를 하고 있지만 김정일의 통일 시나리오가 대사로 읊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레임덕현상이 뚜렷해지는 노대통령의 임기 말기이지만 더 확실한 시기는 미군의 완전 철수와 한미작전 지휘권 인수 시기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미군이 철수한 후 김정일은 가슴에 회심의 미소를 품고 직통전화로 노대통령에게 ‘노대통령 안녕하십네까?’’요즘 건강은 어떤지요’ ‘이제 그놈의 원쑤놈들이 나갔으니 속이 시원합네다’ ‘…’ ‘노대통령이 나와 함께 우리 조선 역사에 길이 남을 큰일 한번 해냅시다.

통일이 뭐 그리 어려운 것입네까. 이제까지 그놈들 때문에 못한거지. 우리끼리 통일한다는데 누가 말릴겁네까?’ ‘우리 아이들(인민군)이 내려가면 그쪽 아이들(남한군)이 환영하고 어깨동무 한번 하면 되는 것 아닙네까’ ‘그리고 노대통령과 내가 얼싸안고 악수하는 것을 세계에 방송 한번 내보내면 끝나는 것이 통일 아닙네까?’ ‘남쪽은 노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다스리고 북쪽은 내가 그대로 맡고…’ 이렇게 해서 밖에서 보면 분명 통일은 되고 있고 김정일 입장에선 통일을 하고 있고 한국에선 통일을 당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촛불데모는 더 이상 못하는 세상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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