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징기스칸의 교훈

2004-07-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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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석(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한 때 인터넷을 통해 유행했던 징기스칸의 가상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 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자 나는 테무친이라는 이름 대신 징기스칸이 되었다.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친족과 사촌들에게 핍박을 받던 징기스칸은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이겨내고 세계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이름은 ‘왕 중의 왕’ ‘막강하고 위대한 군주’를 의미한다.

사람은 여러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흔히 대기만성이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하지만 자꾸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고, 반복되는 실패 속에 자신이 목표했던 일들을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지쳐 늘어져 버렸을 나이에 오히려 삶
을 불태운 사람들이 인생을 늦게 꽃피운 사람들도 있다.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한두번 실패와 좌절을 겪다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땅 속으로라도 들어가버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바로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도 있다.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정작 부끄러운 일은 가난하면서도 뜻이 없음이 문제이다. 또한 지위가 낮다 하여 자신을 비하하는 것 보다 오히려 지위가 낮으면서 아무 능력이 없음을 서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늙음을 한탄하는 것 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늙어감을 한탄해야 한다.

죽음이 찾아온다고 슬퍼하는 것 보다 죽어서 자신의 이름이 잊혀짐을 슬퍼할 일임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분명해야 한다. 그 첫째가 시대감각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간과하는 것이다. 쉴 때인가? 일할 때인가? 훈련의 때인가? 둘째는 방향감각이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열심은 있지만 방향이 없는 것은 오히려 힘든 일을 만드는 격이 되고 만다. 셋째로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의 삶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그 자리가 복된 자리인지, 아니면 멸망의 자리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의 변명을 찾기 위해 구차하지 말자.

해가 뜨면 이내 사라지고 말 아침이슬도 그 순간을 참으로 잘 견디는 것을 본다. 어쩌면 그것이 차마 짧은 순간이나 하나님께서 아침이슬을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주시어 온갖 만물들에게 멋들어지게 치장을 하라고 선물로 주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해 본다.

아름답지만 이른 새벽이나 아침 잠시 눈으로 볼 수만 있고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후드득 떨어져버리는 이슬은 그 짧은 순간을 참 아름답게도 지키어 가는데 우리의 삶은 더욱 빛나야 할 것이 아닌가?

살인한 자가 여자들은 몸가짐을 잘 하고 부자들은 각성하라고 했다. 마치 죄인들이 예수를 잡으러 가는 골이다. 자기를 아랑야 한다. 그래서 옛말에 꼴값을 하라고 하지 않았나? 살아갈수록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지는 이유는 확신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그 확신은 곧 믿음인 것이다.

삶에 대한 믿음을 가져라. 그리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더욱 성실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가자고 감히 외쳐본다. 인생의 후반부를 내리막길 황혼이 아닌, 오히려 새로운 삶을 향한 첫 새벽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인생의 지도를 멋지게 그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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