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Don’t Give Up, Do Your Best

2004-07-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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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녀(수필가)

맨하탄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친구와 더불어 그곳으로부터 가까이에 있는 한 한인식당엘 간 일이 있었다. 불란서 니스 해변가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식당들처럼 자그마한 식당들이 쭉 열지어 있다. 식당 안과 밖에 빼곡히 젊은이들이 앉아서 식사를 한다.

그 식당 근처에는 컬럼비아대학교, 바나드 칼리지, 유니온 쎄미나리 그리고 맨하탄 스쿨 오브 뮤직들이 있어서 다른 지역 식당들과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그 식당에 들어가 벽을 보니 온통 한국에서 어렸을 때 보았던 생활 소(小)도구, 자그마한 미술품들이 빈 자리 없이 꽉 차 있다. 화장실엘 가니 그 곳 역시 오밀조밀 벽과 구석구석이 빈 틈이 없다. 식당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한국의 골동품가게 같은 인상이었다.


이 식당의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궁금증이 생겼다.그리고 2,3년이 지났다. 한 한인 단체모임에서 신임이사로 소개된 바로 그 식당의 주인을 만
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소박하고 꾸밈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한인단체의 장학금을 모으기 위해 예년처럼 디너 볼을 하기로 하고, 그 행사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짧은 준비기간이었는데도 다른 해 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 식당의 사장같이 조용조용하게 일을 많이 했기에 그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드디어 장학금 수여식이 있게 되었고 새로 된 이사들이 수혜자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장학금 수여증과 수표를 건네주고 한 마디씩 조언을 하였다. 식당 사장도 학생에게 수여증과 봉투를 건네주면서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한 마디 하였다. “Don’t give up, do your best”가 주된 메시지였다.

나에게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젊은 미술인들을 도웁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알(卵)재단의 일을 막상 하다보니 여러가지로 애로점이 있고 몇 안되는 창립이사들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이 있어 맥이 빠지는 상태이었기에 그 날 그가 전한 메시지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사진을 보강하기로 하고 미술품 애호가인 그 사장도 이사가 되어주십사 하는 글과 함께 가을에 있게 될 기금모금 계획을 동봉했다. “Don’t give up, do your best” 그 말을 상기하면서.

이 사람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설득해 보리라 마음을 다짐했다. 편지를 보내고 미처 전화도 못하고 있던 지난 토요일 그 사장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주위 몇 분에게 이사 일을 부탁했을 때 쉽게 승낙해주지 않았기에 그 사장이 보낸 이 편지도 이사 아니하겠다는 것인가보다 하고 뜯어볼 용기가 없어 머뭇거렸다.

“어떻든 부닥뜨려야 하는 일” 하면서 봉투를 뜯어보니 편지와 함께 적지않은 액수의 수표가 들어있지 않은가! 너무 기뻐서 밖에 있는 남편에게 소리쳤다. 유리창 밖으로 고개를 디밀어댄채 편지와 수표를 흔들어대면서 “무슨 일인지 아세요?”라고.

한인단체 장학금 수여식에서 그 사장이 “Don’t give up, do your best” 하던 그 말이 그대로 떠오른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매달릴 것을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뒤에서 가능한 한 도와주겠다고 글로 전해주었다. 허공에 그냥 던진 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그 말을 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는 게 너무 기쁘다.

그럴듯 하게 말만 하고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하고 눈 딱 감는 사람들 허구많은 세상이고, 이사가 되어주십사고 부탁하면 “본인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면서 극구 사양하는게 통례인데...그 사장이 언젠가는 미술인들의 우수한 작품으로 꾸민 커다란 연회자을 갖춘 식당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보는 내 마음이 참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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