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삼복더위와 바캉스

2004-07-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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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편집위원)

1년 가운데 가장 더운 기간인 삼복의 첫날이 열렸다. 어제(20일)가 본격적인 여름철 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이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더위는 세 번만 엎드리면 지나간다고 했다. 이 세 번이 바로 초복, 중복과 말복이다. 엎드릴 복(伏)자 세 번만 겪으면 여름 더위가 끝난다는 말이다.


삼복은 초복, 중복 그리고 말복을 일컫는다. 삼복은 양력의 개념이다.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간의 7번째)을 초복, 열흘 뒤인 네 번째 경일은 중복 그리고 입추가 지난 뒤인 첫 번째 경일을 말복이라고 한다(올해는 7월20일 초복, 30일 중복, 8월7일 입추 그리고 8월9일이 말복이다). 이처럼 보통 복날의 간격은 열흘이다. 하지만 입추가 조금 늦는 해에는 중복과 말복사이가 20일이 된다. 이를 월복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삼복기간은 7월 하순에서 8월 중순까지 30~40일 정도라 할 수 있다.삼복은 1년 중 가장 더운 때로 이때의 더위를 삼복더위라 부른다. 옛날부터 복날 더위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풍습이 있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가게 했다. 복중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이들과 부녀자들은 여름 과일을 즐기고 어른들은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탁족을 하면서 하루를 즐긴다.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복날 더위를 막고 보신을 하기 위해 삼계탕이나 개장국을 먹었다. 이는 더운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열을 열로 다스리는 이열치열(以熱治熱)한 조상들의 슬기였다.

신라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유두날 풍습이 있었다. 유두날은 음력 6월16일이다(올해의 경우 양력 7월31일).신라 때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을 풀어버리고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여 유두안이라하고, 유두란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이라는 말의 약어라고 한다.

민간에 전하는 풍속으로는 이날 음식을 장만하여 맑은 시내나 산간폭포에 가서 머리감고 몸 씻고 음주 등으로 하루를 즐기는데 이는 액을 면하고 더위를 잊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날 아침에는 밀국수와 떡을 만들고 수박 등의 여름과일을 차려 사당에 올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유두천신의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풍속만 아니라면 오늘날 더위를 피하는 ‘물놀이’ 행사와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이처럼 더위를 피하는 풍속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오늘날에도 더위가 심한 삼복기간에는 더위를 잘 피하기 위해 여름휴가도 많이 떠나고 삼계탕이나 보양탕 등으로 보양을 위한 음식을 챙기고 있으니 말이다.


흔히 바캉스란 단어가 많이 쓰일 때도 바로 삼복기간이 아닌가 싶다.
바캉스는 프랑스어로 그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인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대개 여름휴가가 40일 정도로 아주 푸근하고 느긋하게 여름을 즐긴다. 휴가를 통해 느긋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부러울 정도다.이처럼 우리 조상들의 삼복기간 풍속에는 휴식을 통해 더위를 이기는 슬기로움이 있고, 바캉스에는 휴가는 느긋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일년 가운데 가장 더운 삼복더위가 시작됐다. 휴가철이기도 하다. 한인사회에는 예전에 비해 휴가를 즐기는 한인들이 많이 늘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휴가라고 해서 특별한 난리를 피우거나 휴가를 갔다 와서는 더욱 피곤해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여름 휴가를 준비하는 한인들에게는 휴식을 통해 더위를 이기는 조상들의 지혜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바캉스의 뜻처럼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알차고 멋진 휴가계획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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