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철밥통을 깨뜨려야 나라가 산다

2004-07-19 (월)
크게 작게
이홍재(리버티뱅크 근무)

대나무 소쿠리에 밥을 담고 삼베 보자기로 덮어 처마밑에 매달아 놓고 먹던 옛날 어머니들도 철밥통 속에 밥은 시간이 좀 지나면 쉬어버린다는 이치 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요즘 한국의 폐쇄된 철밥통사회가 김선일씨 같은 무고한 사람이 처참히 살해된 원인이 무사안일의 관료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고 하면 관련 부처가 아닌 다른 부서의 철밥통들은 억울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고질병 덩어리의 관료사회의 병력을 어찌 이 좁은 지면에 다 옮길 수 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사법부 고위층이 법정에서 피고가 되고 외교통상부 산하 해외공관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탈북자들을 소가 닭보듯 했던 것, 업자들과 결탁해서 뇌물 받기나 눈 먼 돈 나눠먹기 등 꼬리를 무는 부정부패의 기사거리가 없었다면 문 닫은 신문사도 많았을 것이다.

시정(市井)에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야 꿈에라도 넘볼 수 없는 여러가지 국가고시 중에서도 꽃 중에 꽃이랄 수 있는 사법, 외무, 행정고시 출신의 준재들이 선행과 미담의 주인공들이어야 할 터인데 그렇질 못하니 이 백성이 얼마나 박복한 국민인가. 합격만 하면 철밥통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킬 제도적 개혁이 없는 한 바람직한 행정을 기대하는 것은 뜨거운 영계백숙이 “꼬끼요” 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기의 전공이나 소양과는 상관없이 단지 철밥통 하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주입식 문제 풀이와 시험을 위한 시험에 합격했다 해도 공인(公人)으로서의 도덕성, 청렴성, 성실성 등 소프트웨어(Software)나 업무수행 같은 하드웨어(Hareware)를 검증받지 못했을 뿐더러 더 나아가 공복으로서의 사명감이나 희생정신이 없으니 잘 해야 본전이고 자칫 실수하면 하루아침에 역적 취급을 받게 되는데 <내가 왜 중뿔나게 나서서 다치랴>고 생각 않겠는가.

이러다 보니 큰 일에 팔뚝 걷어 솔선하는 사람 없고, 사고 났을 때 책임지는 사람 없는 곳이 바로 한국의 고위직 공무원 사회인 것처럼 보인다. 옛 노래에 <사람마다 벼슬하면 농사할 이 뉘 있으며…> 하는 가락대로 농사해야 할 사람들이 벼슬을 하기 때문에 양키들 콧수염 태우려는 촛불이 난무하고 나라가 사시사철 온통 붉은 색으로 단풍이 들어도 혹독한 겨울 추위가 다가옴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일본 법관 ‘야마구지 요시다’는 “법관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굶어도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고, ‘이준 열사’는 헤이그에서 할복자살로 국제외교를 했다.

행정부의 최고 수장인 영의정 ‘윤방’은 정묘호란 때 자기의 친동생인 평안감사 ‘윤선’이 오랑캐들의 침입에 놀라 활 한 번 쏘지 않고 서울로 도망온 데 책임을 물어 참수할 것을 주청해서 왕이나 문무백관을 놀라게 했고, 여러 사람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군문에 효수하여 죽이니 일견 냉혈한 같이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피를 나눈 친형제지간에 무슨 불공대천의 원수가 되어 아우를 죽였겠는가. 무릇 나라의 녹을 먹는 자 사사로운 정에 얽매일 수 없다는 준엄한 경고요, 조선판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서 역사 속의 얘기지만 우리 모두를 숙연케 한다.


국가공무원을 공복(公僕)이라 하는데 이 복(僕)자는 종(노예)이라는 뜻이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사무관서로 시작해서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총리 비서실까지 근무하고 미련없이 사표를 낸 ‘정두언’씨의 행정평론집에 사무관 위에 무보직 서기관, 서기관, 무보직 부이사관, 부이사관, 그 위로도 이사관, 관리관, 차관, 장관, 부총리, 총리까지 까마득한 것이 바벨탑 같이 높게만 보이는데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수십 개의 부처마다 하늘 사다리다. 이 많은 계급들이 종 노릇 했다는 소리 들어본 적이 있나 묻고 싶다. 여기까지만 얘기하자.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거나 모두가 내가 표 잘못 찍은 탓이다(匹夫有責) 누구를 탓하랴.

테러분자들이 요즘 한국을 특히 목표로 위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정말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