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만 아느냐, 이 아픔을...

2004-07-15 (목)
크게 작게
김윤배(시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무리 치사하고 더러워도 하늘은 침을 뱉지 않는다. 모락모락 연보라색 연기를 굴뚝으로 내 보내면서 저녁밥을 짓는 아낙이 저녁 노을에 만정을 넓게 펴고 식구를 기다리며 조용히 움직이고 있으니까 보기 싫은 구석이 세상에 여기 저기 깔려있어도 하늘은 침을 뱉지 못하고 멀건 눈을 뜨고 대문을 열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일군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지 못하고 누운 홀로커스터 희생자들의 공동묘지는 의외로 조용하다. 죽은 자만도 육백만이 넘는다고 하니 죽은 자 하나에 가족을 셋으로만 쳐도 이천만의 가슴에는 피에 젖어 흐르는 아픔이 고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서하라. 그러나 잊어버리지 마라” 비문에 새겨져 있는 이 한마디 말이 공동묘지를 조용하게 관리한다. 철천지 원수가 되었어야 할 독일을 이스라엘은 용서를 한 것이다. 그리고는 독일 차도, 독일에서 생산한 포도주도, 독일 관광객도 이스라엘은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를 잊지 않고 과거를 새김질 하면서 미래로 가고 있다. 우리 한민족은 그걸 배워야 한다.

하늘은 하늘의 뜻을 잊지 않고 서로 서로 용서를 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지나간 일을 잊는다면 그것은 망각, 망각 앞에서는 새로운 계획이 생겨나지 않는다.

역사를 빈 공간으로 만드는 행위일 뿐, 빈 역사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우리는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잊어버린다. 감정은 과격하나 작심사흘이면 또 잊어버린다. 유행에는 민감하나 고전의 미를 잊어버린다. 촛불도 유행이고 시위도 유행이지만 의식은 구태의연하여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목적 조차도 잊어버린다.

말 조차도 유행 따라 변하지만 행동은 예전과 다름 없다. 가리고 감추는 데에 섹시한 맛이 감돈다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거의 나신이 될 정도로 노출을 하고는 거리를 활보하니 뜨거운 여름 해도 눈을 가린다.

자기 반성은 모르고 남을 비난하고 질책하며 책임을 이동시키는 데에 방향감각이 잘 발달되어 있는 공직자와 정치인들, 자기의 잘못은 다 잊어버리고 남의 잘못만 들추어 내기 바쁘다. 저만 살자고 발뺌을 하는 것이겠지. 하기야 저도 처자식이 있으니 먹여 살리는 일이 우선이라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옮겨놓고 볼 일이겠지. 이것이 한국이다.

누구 하나 내가 진 죄라고, 아니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벼슬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하다. 명예 때문이겠지!
하늘은 웃으면서 거두어주면서 결코 침을 뱉지 않는다. 가난하고 어려우면 찢어질 듯 얇은
그물을 펴서 꿈을 건지려고 한다.
길을 가다 무심히 엿들리는 말소리, “아빠가 돈 많이 벌어오면 그거 사 줄게” 철 없는 아이가 놓을 줄 모르는 투정을 달래는 맥없는 말소리, 분명히 살림살이가 어려운 아낙의 꿈이겠지.

다가온 서글픈 얼굴의 허름한 표정을 들고 가면서 나는 내가 어렸을 적 내 어머니의 구겨진 얼굴을 생각한다. 몇 십년이 지났다. 시도 쓰고 수필을 쓰면서도 아직까지 나는 내 어머니의 그 때 심정을 밝혀내지 못한다.


내 어머니는 가난의 책임을 아버지에게 묻지 않았고 가난을 용서하며 살았다. 그저 빈손 들고 살기에 바빴고 콩나물국에 콩나물 반찬을 준비하면서도 석양녘에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삶은 무엇이며 인생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때에 적시었던 어머니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고 있고 그 때의 어머니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던 여인의 상처를 잊지 못한다. 정치에서, 사회에서 책임이나 떠다미는 벼슬 높은 사람이 되어 남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허기좋게 다 잊어버리고 사느니 가정에서 일어나는 작은 슬픔이라도 잊지 않고 사는 사람, 하늘이 그래서 침을 뱉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고 김선일씨의 피살 책임을 서로 서로 바쁘게 떠다미는 정부의 고위층같은 사람만 이 세상에 산다면 하늘은 이미 침을 뱉었을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