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3류’도 못되는 한국정치

2004-07-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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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한때 한국의 모 재벌이 한국 정치를 3류라고 표현하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한국의 다른 분야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 정치만은 뒤떨어져 후진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그 말이 다시 한 번 생각나면서 3류라는 말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저질화한 정치에 절망하게 된다.


도대체 한국에서 지금 정치가 국민의 생활에 무슨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또 정치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기여하고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뭣 때문에 정치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동냥을 주지 못하면 쪽박이라도 깨지 말라고, 국민의 생활에 도움을 못 주면 방해라도 되지 말아야 할텐데 정치는 생활에 걸림돌 밖에 되지 않는 짓을 일삼고 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지 않고 제도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어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국민의 생활향상이나 행복과는 아무 관계 없는 정치싸움으로 불안감을 주니 정치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일종의 공해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한국 정치판의 실태는 어떠한가. 정치인들은 남이 잘 하면 내가 더 잘해서 나라를 잘 되게 하고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서로 헐뜯고 흠집내서 남이 잘못되면 내가 그 몫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가득 차 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파당의 이익만 생각한다.

그러므로 거짓말과 중상모략, 사기적 수법이 판을 친다. 선거 때 국민을 속여 당선되거나 집권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릇된 정치가 정착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소인배들이 판을 치게 된 정치판에는 진정한 정치인이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정치인들은 지도자들을 자처한다. 그런데 지도자란 무엇인가. 지도자란 앞에서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이 뭔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오를 지어 뛰어간다고 할 때 맨 앞에서 뛰는 속도를 조절하여 사람들이 대열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예정 시간에 예정 코스를 뛸 수 있게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뒤쳐지기라도 한다면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어 다시 대열에 이끌어들이고 또 대열의 앞을 선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자질과 소양이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학문적으로 광범한 교육을 받아 덕성과 지성을 갖추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사명감으로 용기있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이다.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집단의 추앙을 받으면서 집단을 이끌어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아무나 정치를 한 예는 많다. 소련공산주의 혁명후 플로리타리아 독재도 민주주의였으며 북한의 1인 독재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거창한 이름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빗나간 인식 때문에 사람을 섬기는 것도 모르는 조
무래기들이 지도자를 자처하며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런 정치는 3류도 못되는 정치이다. 없느니만 못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애써 번 돈을 세금이란 이름으로 거둬들여 제멋대로 쓰는 정치, 공권력이란 무소불위의 힘을 사유물처럼 마구 휘두르는 정치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란 의리나 양심같은 인간의 기본적 요소나 상식도 팽개쳐 버린 사람들이니 이들에게 그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이런 정치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이 불쌍할 뿐이다. “정치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언젠가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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