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의 몸이 된 스티브 김

2004-07-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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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구(탈북난민보호 뉴욕협의회 회장)

7월 13일, 스티브 김에게는 가슴이 설레이는 감격의 날이다. 2002년 10월 3일, 개천절에 유엔본부 앞에서 7발의 권총을 발사하고 오랏줄에 묶이면서 부자유한 영어의 몸이 된 지 2개월 10일만에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 보고 싶은 친척들, 고향땅 시카고로 향하는 그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 환희와 충격으로 꽉 차 있을 것 같다.


감옥에서 잠 못이루는 수많은 날들 속에서 생각하고 다짐하고 계획했던 일들을 바깥 세상속에서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대장부가 되길 바라고 싶다.
그에게 내려진 재판을 보면서 느낀 점은 미국법원은 여전히 행정부, 당리당략, 뇌물, 대중의 여론과는 상관없이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바로 분별하는 살아있는 기관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어둠이 짙어지면 별빛은 더욱 찬란히 빛나듯이 세상이 어두워질 때 이런 의인들이 일어나게 됨을 보게 된다.안타까운 것은 불행하게도 뉴욕을 제외한 타주에서나, 한국에서는 스티브 김 사건을 거의 모르고 있다.

그의 행위를 놓고 어떤 사람은 비난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칭찬하기도 한다. 판단은 훗날 역사에 맡기기로 하자.

그는 육사 24기로 임관, 한국의 국토방위를 위해 육군 소령까지 수고했다. 도미 후에는 학업을 계속해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시카고의 지방우체국에서 근무해온 성실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슬하에 부인과 두 아들을 둔 가장이다.

그는 세계 정세에 밝았다. 특히 세계로부터 원조를 받아 먹으면서 깡패처럼 큰소리 치고 백성을 굶겨 죽이면서도 대량파괴무기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북한정권에 분노를 가지고 있다.아비가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생명을 죽이고 못살게 해놓고 자식 대까지 대물림해서 적화통일 전략만 일삼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악행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고 있는 세대를 한탄하며 자신의 삶, 가정의 행복까지 포기하면서 육사에서 배운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해서 그 일을 감행했던 것이다.스티브 김은 필자에게 보낸 여러 통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심경을 밝혔다.

<북한이 남한보다 더 빛나는 기독교 융성지역이었다. 이젠 교회가 소멸되고 독재자가 신처럼 행동하는데도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는지 참으로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내 처와 아이들로부터는 가정을 파괴하려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러기에 4개월이 다 되도록 편지 한 번 없고 그간에 성탄절, 새해, 내 생일이 있었는데도 카드 한장 없다. 보험이 없어 약 사먹기도 힘들고 콘도 모기지, 각종 페이먼트 등 때문에 겪는 좌절감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내가 유엔본부의 담을 넘어 빠른 걸음으로 건물 정면에 다가가 첫 방아쇠를 당길 때 과연 총성과 실탄이 고장 없이 잘 나갈까 염려했다.

그런데 정확히 7발 쏘았음이 확인됐다. 내 마음속으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자기 백성을 유인하듯 인간의 정신, 가족의 사랑까지 빼앗은 잔혹한 인간성을 박탈한 인간지옥(Man made Hell)을 만든 북한 독재집단에 두 발, 무엇이 무서워 그 비위 맞추기에 바쁜 남한 지도자들에게 두 발, 그리고 유엔에 대한 유감 표시와 함께 앞으로 꼭 북한동포를 구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민주주의 통일 달성에 힘써달라고 세 발, 이렇게 7발을 사전에 생각하고 꼭 그렇게 되기를 빌면서 쐈다.>

35회에 걸쳐 필자와 나눈 편지 속에넌 더 많은 중요한 사항도 있었다. 바라기는 그의 거사 심경이 책으로 출판되어 잠자는 한국, 평화통일이라는 미명 아래 공산화 되어가는 한국이 깨어날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의인의 수고, 고통을 결코 헛되이, 업수이 여기지 않는 정의로운 한국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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