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졸부와 미국 거부

2004-07-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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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계선(식문화 연구생)

본국 체재중 친구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청첩을 받았다. 나는 당시 2개나 더 청첩을 받고 있었기에 부조금이 만만치 않았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니 가까운 사이는 10만원, 보통은 5만원, 시골사람들도 최하 2만원인 것을 알고 5만원으로 통일하였다.

찾아간 식장은 강남의 유명한 회관이었는데 그 날은 거의 동시에 네 군데에서 식을 올리기에 그곳은 장바닥 같이 북적였고 간신히 식장을 찾을 수 있었다. 식은 25분이 채 안 걸렸는데 하객의 대부분은 입장도 않고 봉투만 건네주고 떠났기에 장내는 한산한 편이었고 주례사가 의외로 짧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식후 피로연장으로 가니 그곳은 네 군데의 하객들이 마구 섞여 있었고 부조금 건넬 때 받은 식권으로 아무 자리에나 앉아 갈비탕 한 그릇 먹고 집으로 와야만 했다.

며칠 후 ‘thank you’ 전화가 왔기에 친구와 통화하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이번 결혼식에 약 2억원이 들었는데 결혼비용과 여행경비 이외에도 신혼부부의 아파트 값과 자동차, 세간살이 일체를 구입하는데 그 돈이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원래 시골 출신인 그는 최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이 신도시로 편입되어 불모지에서 큰 자산가가 되었고 졸부가 되어버린 그는 씀씀이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직업도 없는 아들의 혼사에 그같은 거액을 쓰는 것을 볼 때 결혼적령기의 자녀를 셋이나 둔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런데 이번 스미소니언 잡지 6월호에 ‘누가 억만장자가 되길 바라겠는가?’라는 기사를 보고 위안을 받았기에 소개하려 한다.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설립자이며 통칭 석유왕으로 알려진 라커펠러의 아들 존 D. 라커펠러 2세라면 자선사업가로서 아카디아 국립공원 기증자로서 뉴욕 유엔본부 건물의 부지 기증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산가이다.

그가 1920년 46세 때 후에 그 재단의 회장이 된 라커펠러 3세와 맺은 용돈에 관한 약정서가 그것이다. 1. 5월 1일부터 존의 용돈은 1주에 1달러50센트로 한다. 2. 돈의 사용을 분명히하며 아빠가 만족스러우면 다음 주부터 10센트씩 올려주는데 총액 2달러를 넘을 수 없다. 3. 장부 정리가 정확치 않거나 아빠가 만족치 않을 땐 매주 10센트씩 감액한다.

4. 영수증이 없거나 사용처가 분명치 않아도 매주 10센트씩 감액한다.
5. 장부는 정확히 기재했으나 계산이나 기재 방법이 틀렸을 때는 감액하지 않는다.6. 아빠가 증액이나 감액하는 유일한 결정권자이다.

7. 적어도 용돈의 20%는 자선행위에 쓰이기를 기대한다.8. 적어도 용돈의 20%는 저축하기를 기대한다.9. 모든 구매나 지출행위는 정확히 장부에 기재하길 기대한다.10. 부모 앞으로 계산되는 구매는 사전에 부모로부터 또는 가정교사인 미스 스칼스의 허락받기를 기대한다.


11. 만일 존이 용돈의 한도를 초과하는 물건을 구매할 때는 우선 부모나 미스 스칼스의 허락을 받으면 필요한 돈을 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계산서를 첨부해야 하고 거스름돈이 남았을 때는 그 날로 손에 손으로 넘겨주어야 한다.

12. 존은 가정교사나 친구나 집안의 또 다른 어느 누구로부터 교통비 이외에는 대답해 주기를 요청할 수 없다.13. 8조에 언급한 것과 같이 저축할 경우 만일 그 저축액이 20%를 초과하게 되면 그 초과분 만큼 아빠가 더 그 구좌에 넣어줄 것이다.

14. 우리가 맺은 이 약정은 상호간 동의에 의해 변경될 때까지는 이행되어질 것이다.
두 사람의 싸인.

10여년 전 라커펠러 3세가 타계했을 당시 내가 일하던 가게에 물건을 사러왔던 50여세의 흑인남성이 가게에서 들려오는 긴급 뉴스를 듣고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울고 나간 것을 기억한다.미국 거부의 아들은 대장부가 되었는데 한국 졸부의 아들은 졸장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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