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근심을 푸는 곳

2004-07-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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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편집위원)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한다. 풀이하면 ‘근심을 푸는 곳’이다.소변이나 대변을 보는 행위를 ‘근심과 걱정을 털어 내는 일’로 비유한 이 ‘해우소‘라는 명칭은 생각할수록 잘 지었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 근심 걱정거리를 풀어버리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게다. 그런데 배설하는 일에 그런 큰 뜻을 결부시킨 지혜는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해우소‘라는 말을 절에 처음으로 등장시킨 사람은 경봉 스님이라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님은 소변보는 곳에는 ‘휴급소‘, 큰일 보는 곳에는 ‘해우소‘라는 팻말을 내걸게 했다. 그리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소변보는 곳을 휴급소라고 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 그 곳에서 쉬어가라는 뜻이야. 그럼, 해우소는 뭐냐. 뱃속에 쓸데없는 것이 들이 있으면 속이 답답해. 근심 걱정이 생겨. 그것을 그곳에서 다 버리라는 거야. 휴급소에 가서 다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 버리고 가면 그것이 바로 도 닦는 거지”라고 했다고 한다.


이처럼 ‘근심을 푸는 곳’인 해우소에는 또 다른 깊은 뜻도 숨겨져 있다. 이는 바로 배설하는 것은 곧 비운다는 뜻이다. 다 비워버리면 뱃속이 상쾌해지는 것처럼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진다. 그러므로 비운다는 것은 ‘삶의 분별과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이다.

‘버리고 또 버리나니 큰 기쁨 있어라’ 라는 글귀가 붙어 있는 해인사의 ‘해우소‘는 식당인 ‘공양간’의 반대 방향에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일상이 ‘먹는 일’과 ‘비우는 일’은 비중이 똑같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 생활에서도 채우기만 하고 버리지 않는다면 삶의 비만이 오기 쉽다. 더군다나 그것이 욕심이라면, 마음을 해치는 독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삶의 리듬에도 형평성 있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가르침이리라. 즉, 욕심을 다 털어 버리면 걱정할 일도 없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또한 해우소는 공양간, 세면장과 아울러 절에서 정한 삼대 침묵처이다. 이곳을 이용할 때는 누구든지 절대 묵언의 규칙이 적용된다.

다시 말해, 밥 먹고 목욕할 때와 볼일 볼 때는 왁자지껄 떠들지 말고 그 일에 조용히 집중하라는 가르침일 게다. 이는 침묵과 명상으로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순수하게 그 일에 몰입하는데는 해우소만큼 좋은 공간은 없다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 아닌가 싶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있어서 근심, 걱정이 없을 수 없다. 세상에 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일 게다.

한인사회를 둘러보면 걱정하는 이들이나 모습들이 천차만별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그리고 노인들은 노인들대로의 근심 걱정을 하고 있다.

근심거리도 다양하다. 시험 걱정, 이성 걱정, 결혼 걱정, 자녀 걱정, 비즈니스 걱정, 직장 걱정, 가족 걱정 등등 무궁무진하다. 뿐만 아니라 아예 걱정이 습관이 된 사람, 걱정거리가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하는 사람, 큰일에 태평이고 작은 일로 걱정하는 사람, 사실보다 확대시켜 걱정하는 사람 등등 걱정하는 타입도 각양각색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다보면 어떤 일 때문에 걱정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걱정이라도 몸 속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사실보다 과장된 근심에 붙들리게 된다고 한다. 근심 걱정은 전염성이 있고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심 걱정이 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심 걱정거리가 생
길 때마다 절의 ‘해우소‘를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심을 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간의 대화’며 가장 좋은 곳은 ‘가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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