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7.4독립기념일행사 소고(小考)

2004-07-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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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신(보스턴)

미국은 독립기념일이 되면 전국적으로 불꽃 축제와 연휴를 이용해 수많은 자동차 여행등 다양한 행사로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특히 미 6.25참전용사회가 참가한 퍼레이드는 그 행사를 해야 할 의무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70세가 넘은 노병들이 땀을 흘리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서고 양편에 유엔기와 6.25참전기 그리고 집총대의 호위를 받으며 4열 종대로 제복차림의 회원들이 도열해 행진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를 받들고 발을 힘차게 내딛는데 구호대원이 Korean War Veterans! Freedom is not Free! 등을 외치면 길 양편의 수많은 참관객들은 와!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노도와 같은 박수갈채로 환영했다.


노병들은 신이 난다. 그걸 좋아한다. 현역 장갑차가 앞서 가고 두 다리가 없는 상이용사 레리씨가 6.25 당시 흔히 보던 퇴역 짚차에 의연히 앉아 있다. 군데 군데에 부동의 경찰관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는다. 군, 관, 민의 코드가 맞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대열 뒤에는 여러 단체가 가지각색의 형태로 지나가는 가운데 안남열 사범이 이끄는 20여명의 태권도 문하생들이 다양한 묘기를 보였다. 실로 한국을 빛내는 것이었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보스턴 교외에 위치한 렉싱톤, 콩코드에서부터 독립전쟁이 시작되었고 1776년 7월 4일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미합중국이 탄생했지만 세계 초강의 군대였던 영국군과 오랜기간 싸운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미국은 내외적으로 많은 전쟁을 해야 했고, 급기야 1945년에는 일본을 항복시키고 한국을 해방했지만 종전 며칠을 앞두고 소련이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38선이 생겼고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다.

국제무대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과의 사이에 ‘냉전’이 생긴 상태에서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강행하여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계속 남진했다.

이 때에 미국이 즉각 개입하여 5만6,000명의 전사자를 내며 자유와 안전, 평화, 민주주의의 싹을 키워주어 오늘의 부강한 한국을 낳게 한 것은 오로지 자유라는 미국 독립정신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한미는 동맹국이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6.25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북의 핵은 우리 민족의 것이며 미군은 철수하라. 중국과 손잡아야 한다. 보안법은 없이 해야 한다 하는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사항에 동조하고 더 나아가서 국회의원 몇십명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나쁘다는 성명을 냈다. 또 어떤 교수는 부시대통령을 국제 전범재판에 회부하자는 등 엄청난 주장들이 많은데...


잘못된 역사는 진보나 보수에 관계 없이 개혁되어야 하겠지만 제 나라의 오늘을 지켜준 미국을 배은망덕할 뿐더러 적대국시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라면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많은 군대를 휴전선에 배치했으며 중국은 누구인지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는 짧지만 그 넓은 곳에 여러 전쟁에서 전사한 그 지역 출신 군인을 추모하는 아름다운 공원이 수없이 많은데 으례 한국전쟁 전몰용사비가 있으며 지금도 계속 건립 중이다. 이런 것들은 미국 독립 이후의 역사를 공원에서 수시로 볼 수 있는 기록들이고, 참전 노병들의 퍼레이드는 그 때의 증인들의 행사이다.

그런데 한미동맹에 금이 가고 반미, 반한의 세상이 된다면 전몰기념비나 용사들의 퍼레이드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사회에 동화하여 그들과 친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미국독립기념일은 미국의 행사라서… 라고 말한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내 나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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