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형사범죄와 규칙위반 행위

2004-07-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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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관)

형사사건으로 재판받아 오던 사람이 재판이 끝나면 이제 법원에 더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긴장을 풀기 마련이지만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끝났는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 형사사건 공판에서 증언대에 선 피고인에게 검사가 형사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질문했다. 즉 전과가 있느냐 하는 질문이다. 이 여인은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가 검사의 뒤따른 집요한 질문에 “몇 해 전에 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데 몇 번 법원에 출석했다가 재판이 끝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말하자면 재판이 끝났으니까 그만이
지 유죄로 끝났는지 어떻게 끝났는지 잘 모른다는 답이었다.


알고 보니 그 때에도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은 것인데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아무런 처벌은 없었던 모양이어서 이 여인은 처벌이 없었으므로 사건이 기각된 것처럼 생각했다.정작 그것이 무슨 혐의로, 어떤 등급의 형사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지는 모르고 있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일전에 잡화가게에서 위조상품을 판다는 혐의로 경찰의 티켓을 받고 법정에 출석했다는 사람으로부터 문의가 왔다. 검사가 벌금형을 주겠다고 제의한 것을 일단 연기를 하고 왔는데 이 벌금형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은 양식 있는 사람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사건 결과에 따른 법적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벌금형이 규칙위반 혐의(Violation)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형사법 위반혐의(Crime)에 의한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지 벌금이 얼마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주었다.

형사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 처벌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이것은 형사범죄의 전과로 기록이 남는다는 뜻이다. 반대로 규칙 위반혐의라면 벌금을 얼마를 물던 간에 이것은 형사사건이 아니므로 아무런 범죄 기록이 남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두가지 사이에는 엄청난 법적인 결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전과자냐 아니냐 하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한인들 중에 도로교통법 위반혐의로 재판받으러 오는 사건이 많다.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으면 벌금형에 더하여 운전면허증에 불리한 가산점수가 주어지는 혐의들이다. 면허증에 점수가 가산된다는 것은 형사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전과자가 되는 것처럼 그 점수의 비율에 따라 자동차 보험료가 올라가고 어느 수준의 점수에 이르면 면허 자체가 정지되거나 취소되
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점수가 가산되면 그 가산점의 비율에 따라 3년간 보험료가 올라가게 되므로 뉴욕같이 보험료가 비싼 지역에서는 금전적으로 엄청나게 비싼 벌금이 되는 셈이다.

한인들이 많이 걸려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건은 자가용으로 상용 목적에 차를 사용한다는 혐의로 적발된 사건인데 보통 티켓 4장을 한꺼번에 받게 마련이다. 공구를 싣고 공사일을 하러 다니는 건설업자들이나 가게의 물품수송 등의 목적으로 화물 밴을 가진 사람이 보험료를 아끼려고 일반 자가용으로 등록해서 쓰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혐의로 받은 티켓 그대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당장 법원에서 선고되는 벌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가산점 때문에 올라가는 보험금을 따지면 그 손실은 적어도 수천달러에 이를 수 있다.

다행히 법원에서는 이런 가혹한 사정을 감안해서 대개의 경우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에서 행정규칙 위반 혐의로 바꾸어서 법원의 벌금만 무는 것으로 끝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어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배려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검사의 형량 제의가 있을 때 그 처벌 형량에 신경을 쓰는 것 보다 그것이 형사범죄 혐의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지 아니면 규칙 위반으로 제의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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