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행과 불행은 모두에게 있다

2004-07-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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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한국 모 재벌의 산하 업체에 총 책임을 맡은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연봉도 많다. 보통 직장인들의 열 배는 된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잘 나가는 사람이다. 남들은 50대에 명퇴다 하여 다들 직장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50대에 더 주가가 올라가는 사람 중 하나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에겐 불행이 없어 보인다.

지난 해 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그의 아들이 군대 입영영장을 받았다. 입대를 얼마 남기지 않고 그 아들은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정동진으로 갔다. 그는 그 곳에서 하루 저녁 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고 나와 길을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음주 운전자의 과속운전에 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사망했다.


죽은 젊은이에겐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손자가 군대를 들어간다고 했는데 왜 인사를 오지 않느냐고 아들 부부에게 성화다. 부부는 할머니에게 아들의 사망소식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혹시, 할머니가 손자의 죽은 사실을 알면 상처를 받고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됐던 것이다.

나중에야 할머니도 손자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을 게다. 할머니보다,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그 젊은이. 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승승장구한 출세를 보며 그는 자랐다. 군대를 다녀오면 앞길이 보장돼 있었다. 그의 돌연한 죽음은 부모와 할머니의 마음에 큰 상처를 냈고 행복했던 그 가정에 큰 슬픔을 안겨주는 불행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불행을 안 가진 가정은 없다. 작든 크든 사람들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게 세상이다. 그것이 생이자 삶이다. 인간이다. 태어나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슬픔과 불행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신(神)일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걸어가는 게 인간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Dust to Dust) 게 인간이다. 수백 억 원의 재산을 갖고 고래등같은 집에 산다한들 때가 되면 가는 게 인생이자 인간이다. 수십만 달러 자동차를 탄다 한들 무엇하겠는가. 갈 때,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사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큰 불행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복인 것 같다. 욕심 없이 하루하루를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중의 복인 것 같다. 수입이 적더라도 집안에 화가 없고, 집안이 화목하면 복인 것 같다. 사람은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다 제 앞에 놓인 돌부리에 체여 넘어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앞을 못 보기 때문이다.
부귀와 명예에, 그 욕망을 채우려 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은 나름대로 욕망은 채웠다 하겠지만 인생은 마감했다.

그들이 남긴 것이 무엇인가.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도 한도 없다는 것을 남겼다. 짧은 인생.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태어날 때 인간에게 지워진 천형(天刑)같은 욕심의 굴레다. 이런 욕심을 줄이는 게 행이자 복인 것 같다.

욕심, 끊지는 못한다. 줄이는 방법은 있다. 자신의 현재의 삶에 최대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감사의 생이 선행(先行) 되어야만 한다. 감사의 생은 자신의 살아있음, 즉 생존자체부터 감사로 시작되어야 한다. 한 푼의 대가도 없이 주어진 자신의 목숨. 태어남 자체가 감사되고, 목숨의 가치가 최대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비교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지 때문이다. 나쁜 비교가 있고 좋은 비교가 있다. 나쁜 비교는 남을 시샘하는 비교다. 좋은 비교는 남을 의식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열심히 따라가려 노력하는 긍정적 비교다. 좋은 비교는 삶에 보탬이 된다. 나쁜 비교는 쓸데없는 욕심만 키운다.

또 한가지는, 자신에게 불행이 있어도 남들 또한 불행을 갖고 살아간다고 인식해야 한다. 자신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 생각이다. 하늘은 인간의 행과 불행을 조정하는 것 같다. 두 번의 미 대통령을 지낸 레이건도 말년 10년은 자신도 알아보지 못한 채 병을 앓다 쓸쓸히 떠난 것을 보면 그렇다. 불행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행과 불행의 척
도는 알고 살아가야 한다. 그 척도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외아들을 잃은 그 아버지.

아들을 살려 낼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도 마다하지 않을 게다. 이것이 바로 척도다. 행과 불행은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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