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서의 양면성

2004-07-01 (목)
크게 작게
홍순영(보스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불완전한 인간은 생존경쟁이란 수법 안에서 정직한 경쟁 보다는 부정한 경쟁으로 먼저 남을 쓰러뜨려 놓고 이익과 명예를 함께 추구하려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선의의 경쟁사회가 병들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현재 우리들의 이민사회 안에서도 여러 형태의 투서와 고발로 아픔을 겪는 이웃이나 형제의 울부짖음이 들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에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지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뜻하지 않은 갈등이나 오해는 어느 경우에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해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비판하는 평도 달라지게 된다.

투서와 같은 비정상적인 수법으로 한 개인을 매도하고 특히 섬기는 교회나 성직자를 음해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것이 투서의 목적이었다면 그런 행위는 분명 정도를 벗어난 파렴치 행위자로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확실한 통계수치는 없으나 불법체류자로 이민국에 체포되어 추방된 한인들의 경우, 거의가 동족인 한인들의 고발성 투서 때문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대도시 한인업소에선 심한 인력난을 겪으면서도 의식적으로 한인들의 고용을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어느 대도시 한인사회에서 영주권이 없는 어느 유학생 부인이 한인식당에서 웨이추레스 일을 하다 불시에 들이닥친 이민국 단속반에 체포되어 추방된 안타까운 사연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이 유학생 부인의 경우도 한인 경쟁업소의 투서에서 비롯된 추방이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이곳 보스턴 지역에서 오랜 역사와 많은 교인이 출석하고 있는 어느 한인교회의 경우 담임목사 은퇴와 후임 목사 선임문제를 가지고 파송권을 강행하려는 미국인 감독과 교인들 간에 의견 대립으로 교회가 혼란을 겪는 와중에 평소 은퇴 목사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일부 장로라는 사람들이 은퇴 목사를 음해하는 투서를 연회 감독에게 제출하는 일로 교회가 심한
내부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

신성해야 할 교회에서 기독교의 본질인 화해와 용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교회 중직인 장로라는 사람들이 70세 은퇴를 눈앞에 둔 목사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엉뚱한 상상력으로 투서를 하는 일이 과연 기독교인의 바른 자세인지에 피해 교회와 교인은 물론 이 지역 많은 한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익명의 투서가 때론 불합리한 관행이나 숨겨져 덮어질 수 있는 비리나 의혹을 밝혀내는 촉진제의 역할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서는 자기가 품고있는 감정을 법 테두리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주장하기 보다는 자기가 안고 있는 비리나 피해 의식을 숨기기 위해 투서라는 방법을 통해 경쟁자를 쓰러뜨리려는 발상이 투서를 하는 사람들의 양면성이다.

사실 우리의 이민사회를 들여다 보면 깨끗하고 흐뭇한 미담이나 선행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반면에 깨끗치 못한 편법이나 관행이 정도(正道)가 되어 개인이나 공동체, 특히 마음의 공동체인 교회나 목회자의 일생을 파멸로 몰아놓는 음해성 고발 때문에 많은 교회가 분란을 겪고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보고 듣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망국적인 투서는 근절되어야 한다. 투서가 나와는 무관한 일로 한낱 무관심으로 넘어간다면 앞으로 제 2, 제 3의 투서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함께 염려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