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술과 같은 인생

2004-07-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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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석(정신과전문의,한미문화연구원장)

한 오십대의 백인 남자가 찾아왔다. 술 문제가 있으니 치료해 달라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술 문제 때문에 제 발로 걸어오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는 자기 배우자가 이혼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취중운전에 걸려서 할 수 없이 온다. 알고 보니 이 사람도 자기 부인의 협박에 겁이 나서 온 경우였다. 그래서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술을 완전히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양을 줄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해 주고 당신의 선택은 술을 완전히 끊거나 아니면 계속 똑같은 정도로 마실 수 밖에 없다고 해 주었다.


얼굴이 시무룩해진 이 사람은 조금 있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 없어 왠일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의 대답 또한 어처구니 없었다.술이 자기 인생의 유일한 기쁨인데 아주 끊어야 된다니 앞으로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할지 암담해서 슬퍼 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혼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감히 계속 술 마실 생각도 못하는 모양이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나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한국사람들이 세계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고 술에 겁이 없는 민족으로 손 꼽히고 있다. 몇년 전 유엔 통계에 의하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술을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뉴욕주만한 나라에서 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도 그렇고, 뉴욕에서도 그렇고 취중 운전에 제일 많이 걸려오는 민족이 한국사람이다. 뉴욕 플러싱에서 베이사이드로 가는 노던 블러바드에는 밤이면 순찰차들이 깔려 있다. 이 지역에는 한국음식점과 술집이 또한 깔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한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술이 무엇인지 알고들 마시는가? 그것은 과일이나 곡식을 일부러 썩혀서 만든 썩은 물이다. 고급 용어로 말하자면 공업적으로 발효를 시켜서 만든다고 하지만 막말로는 썩힌다는 것이다.

썩은 것을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썩은 물 마시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이라는 사람은 가엾기도 하다.그런데 사람들이 일부러 썩혀서 생긴 물질을 좋아하는 것은 과일과 곡식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양심과 윤리, 도덕심을 썩혀서 거기에서 생기는 이득을 즐긴다.

술 얘기로 시작했으니 말이지만 지난주 한국신문에는 한국의 모 검사가 공금을 술 마시는데 썼다가 문제가 되었다. 아마 양심이 썩으면 곡식 썩은 물을 더 찾게되는 모양이다.

나는 취중운전에 걸려서 온 많은 한국사람들의 진단과 치료를 맡고 있기도 한데, 많은 사람들이 치료 받으러 오는 것은 좋은데 자기의 생계 때문에 바쁘니 치료비를 한꺼번에 받고 치료 다 받은 것으로 해 달라는 것이다.


양심과 윤리, 도덕심이 썩은 사람들의 비행은 매일 신문기사들을 메우고 있다. 커네티컷 주지사가 거액의 뇌물을 받은 것이 도화가 되어 사표를 내고 말았다. 클린턴대통령은 백악관 안에서의 자기의 추행은 성추행이 아니라고 우겨댈 만큼 양심과 도덕심이 실종되고 말았다.

작게는 가정에서도 썩은 양심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여자는 남편의 돈을 실컷 훔쳐 빼돌려 놓고 시집식구 일을 핑계로 이혼하자고 대들어 이혼한 다음 세상 사람들한테는 남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고 거짓말 하는 것도 보았다. 어떤 남자는 여자의 재산이 탐이 나 결혼해 놓고 노름으로 그 재산을 탕진하고는 쫓겨나자 자기 아내가 바람이 나서 자기를 쫓
아냈다고 하는 것도 보았다.

양심이든, 곡식이든 썩혀서 생긴 것들은 사람에게 해로운 것이다. 숲은 한 때 기분을 좋게 할지 모르나 결국은 그 사람의 몸을 망쳐놓을 것이요, 부정하게 생긴 돈이나 이득은 일시적으로 즐겁게 할 지 모르나 결국은 그 사람의 가정과 사회적 지위와 자기 자신의 마음을 파괴해 버릴 것이다.
썩히는 짓은 무조건 모두 피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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