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적자 인생

2004-06-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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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적자에서 만세를 부르는 것이 있다. 골프다. 정해놓은 타수 보다 적자폭이 많을수록 골프에서는 승리자가 되고 흑자폭이 많을수록 꼴찌로 밀리게 된다. 삶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흑자 투성이의 삶에서 골프라도 있으니 흑자 인생들이 위안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대부(大富)의 나라 미국에서도 이제 사치는 그만 두고서라도 먹고 사는데에만도 모자라기가 일쑤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면서 벌어도 씀세를 수입이 감당하기가 어렵다. 휘발유 값이 거의 종전에 비하여 갑절로 뛰었고 자동차 보험료도 사다리를 타고 정신없이 위로만 올라간다.


한달치 건강보험료만도 웬만한 한 사람의 한 주 주급보다 많으니 있던 보험도 취소를 해야 할 판이다.대학의 등록금도 어디 한군데 내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고 올리기만 일쑤고, 교육세다 재산세다 하는 동네 세금도 해마다 오르기만 한다. 열단, 열두단에 일불 하던 그 흔하고 흔하던 파도 석단, 아니면 넉단에 일불이고, 방부제 진하게 섞은 물에 기준치도 없이 풍덩풍덩 담갔다 꺼내서 말린 중국산 식품이 아니면 식품이란 식품은 그 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이제는 미국생활도 만만치가 않다. 적자에서 승리하는 골프같은 인생, 이 세상에는 없겠지. 채소밭에서 손톱이 다 닳도록 일을 하며 살던 옛날 사람들은 구두 신고 신선이 된지 오래고, 손톱에 물감을 들이고 사는 현대의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승살이 적자에 꾸어다 메꾼 빚 갚기에 짚신도 못 신고 저승길을 가야 한다.

세상이 발전하면 살기도 더 편안하고 걱정이 줄어야 하는데 현대라는 마당에 살기 위해서는 그와는 반대로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총이나 활을 들고, 발소리마저 소리없이 죽이고 짐승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먹이가 사방천지에 깔려있는 것도 아니다.

대문 밖에만 나가면 먹을거리 될만한 짐승이 늘어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인생도 사냥길에 나섰다가, 더러는 잡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어느 땐 재수좋게 횡재하는 날도 있지만 사냥질이 끝나는 그 어느 마감날에 결산을 해 보면 신발이 다 닳도록 산야를 헤매이며 잡아들인 짐승들은 허상이었는지 보이지 않고, 결국 인생은 헛탕이란 단어만 눈그물에 걸려 남는다.

시간을 잘라서 먹다 보면 남는 것은 죽음뿐인 적자인생이지.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정해진 인생의 기럭지 보다 더 오래 산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운동을 하면 건강하게는 살겠지. 건강하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건강이 인생살이에 오히려 고통이다. 끊임없이 해야 하는 사냥질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운동도 보약도 동의를 해 주겠지만 세상에 올 때에 이미 두 손에 받아 챙긴 인생의 기럭지를 내 맘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는 없는 것이지. 곶감 빼어 하나씩 둘씩 달게 먹어치우듯, 째깍째깍 가는 시간 쉼없이 빼어다 버리며 인생이 가는 걸 거기에다 무슨 수로 시간을 보태어 흑자인생을 만들겠는가!

권력이 흥건한 사람이나 주머니에서 돈이 철철 넘쳐나오는 사람,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나 머리를 숙이고 울며가는 가난한 사람, 모두가 인생에 모자람만 남아도는 인생파인 것을.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모두가 서글퍼서 측은한 생각이 든다. 잠시 시름을 잊고 웃는 내 웃음도 허름하기 짝이 없어 나도 슬프다. 그렇다고 하루가 왜 이리 빨리 가고, 일년이 왜 이리 후딱후딱 지나가느냐고 하늘을 야단칠 수가 없다. 다만 조급한 마음을 달래면서 기왕에 뻗어있는 길에다 한시간의 노동을 차곡차곡 쌓아서 하루의 최선을 디밀어 본다.

인생은 그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등대가 바라보는 아주 먼 곳의 지점, 등대의 불빛이 캄캄한 바닷길을 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아니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채 자기가 가는 길에 최선을 다 하며 다가가는 열정, 그런 얼굴에서 오히려 적자에서 승리하는 하얀 골프공의 행진같은 편안한 얼굴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화이트플레인스에 있는 토다이 식당의 젊은 전문인 이효철씨의 밝은 얼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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