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괘씸한 패러디

2004-06-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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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편집위원)

패러디(parody)는 ‘풍자나 희화화를 위해 작가 또는 작품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모방하는 문학 혹은 예술활동’이라고 정의된다.패러디는 단순한 모방차원이 아니다. 대상이 된 작품과 패러디를 한 작품이 모두 새로운 의
미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표절과 구분된다.

원래 패러디란 말은 ‘대응노래(count-song)’, ‘파생적인 노래’라는 뜻의 고대 희랍어 ‘parodia’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이때 접두어 ‘para’에는 ‘대응하는(count)’, ‘반하는(against)’, ‘이외에(besides)’의 뜻이 있다고 한다.이 단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등장한다. 기원이 오래된 용어이다. 고대 그리스의 풍자시인 히포낙스가 그 시조라고 한다.


패러디는 포스트모더니즘 풍조에 따라 소설에서부터 음악, 영화, 광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유행되고 있다.최근 인터넷에는 많은 패러디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현상을 이리저리 다른 각도에서 해부하고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기발한 풍자와 해학을 통해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것도 인기 비결이다. 기존의 언론매체에서 볼 수 없었던 원색적이고도 노골적인 풍자가 인터넷의 힘을 빌려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패러디는 남의 작품을 비틀고 희화화하면서도 원작에서 맛 볼 수 없는 블랙유머로 배를 잡고 웃게 하는 가운데 원작 이상으로 가슴에 와 닿는 감동과 비애를 맛보게 해 주는 품위와 철학을 지녀야한다.

품위를 잃은 것은 ‘패러디’라 할 수 없다. ‘패러디’를 빙자한 막가파 식은 더욱 아니다. 비웃거나 깔보고 놀리는 ‘조롱식 패러디’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유머사이트인 조크드닷컴은 고 김선일씨 살해장면을 패러디 하여 웃음거리로 삼는 30초 짜리 동영상을 등록했다. ‘김일선 참수 비디오(Kim il-sun Beheading Video)’란 제목으로 이름만 살짝 바꾼 김씨 살해 장면을 패러디 한 것이 명백하다. 이 동영상은 온 몸을 두건과 천으로 감싼 3명의 인물이 무릎을 꿇고 있는 다른 남성을 덮쳐 목을 조르는 장면이 담겨있어 김씨 사건을 조롱거리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 주류방송사인 MSNBC가 고 김선일씨 피살과 관련해 비웃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으로 알려져 한인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MSNBC는 김씨 피랍사실이 알려진 지난 21일 아침뉴스쇼 프로그램인 <아침의 아이머스>에서 “살고 싶다”며 절규하는 고 김선일씨를 비하하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고정 출연자이자 실행 프로듀서도 함께 맡고 있는 버나드 맥커트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로 알려졌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김씨를 웃음거리로 삼은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분노할 만큼 증오스러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괘씸하다. 너무도 괘씸하다. 하는 짓거리가 참으로 괘씸하다.우리는 고 김선일씨를 조롱한 MSNBC의 보도를 그냥 묵과해서는 안 된다. 천인공노할 만
행을 가만둘 수 없다. 야만스러운 행동을 규탄해야한다. 잘못을 따지고 나무라야한다. 그릇된 실수를 꾸짖어야 한다.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가책을 느끼도록 해야한다. 잘못을 회개하도록 징계해야한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절이나 신의를 모르는 밉살스런 언행을 응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상업 언론의 만행에 항의 서신을 통해 한인들의 공식입장을 전해야 한다. 또한 방송국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도 받아야 한다.

뉴욕한인회와 총영사관을 비롯한 모든 한인단체들은 강경한 입장으로 범 한인사회 차원의 다각적인 대응을 신속하게 펼쳐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서 한인들을 비하하는 ‘괘씸한 패러디’가 더 이상 자행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하나된 힘을 보여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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