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테러는 응징의 대상

2004-06-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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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이라크의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한국인 회사원 김선일씨가 무참하게 살해 당했다. 그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고 참수라는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살해된데 대해 온 세계가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지난번 이라크 전쟁을 직접 주도한 나라인 미국의 민간인이 살해됐을 때도 충격이 컸었는데 직접 전쟁을 하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후 평화유지를 위해 추가 파병을 하려고 하는 한국의 민간인이 이처럼 살해된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제 한국은 세계의 중심과제인 테러와의 전쟁에 직접 끼어들게 되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과거 인간의 생명이 경시되었던 시대에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이 참수였다. 주로 대역 죄인을 참수로 처형하여 일반에 공포심을 일으켜 다시는 그와같은 반역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혁명 직후 공포정치시대에도 반혁명 세력에 공포를 주기 위해 길로틴으로 참수하는 처형방법을 썼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까지 참수형이 있었다.

그러나 왕족이나 사대부의 경우에는 명예를 존중하여 대역죄인의 경우에도 참수 대신 사약으로 형을 집행했다.또 과거 인간의 생명이 경시되었던 시대에는 전쟁에서 이긴 군대가 민간인을 약탈하고 노예로 삼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시대가 되면서 전
쟁 중에도 민간인을 살상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2차대전 후 체결된 제네바협약에서는 전쟁 중 민간인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민간인인 김선일씨를 참수라는 극악한 방법으로 살해한 이라크 테러집단의 만행은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말대로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행위”이다. 이 집단이 이라크인의 저항운동이란 성격을 내세우더라도 알 카에다가 조직한 무장세력이란 점에서 테러를 반대하는 인류의 적이다.

이 테러집단이 한국인을 살해한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 내에서 이라크 파병 반대 여론을 일으켜 한국군의 파병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 지난번 스페인 마드리드의 열차 폭파 테러로 이라크에서 스페인의 철군을 관철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주둔 연장을 저지한 것처럼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 대한 위협용일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내에서는 파
병에 대한 찬반론이 다시 일고 있으며 국회에서 여야의원 50명이 추가파병 중단 및 재검토안을 발의했다고 하니 앞으로 그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명분이 확고하지 않고 국내에서도 일부 반대하고 있는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쟁 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라크의 치안관리를 위해 다른 나라의 파병을 원하고 있고 특히 한국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파병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를 거절한다면 미국과 등을 지겠다는 말과 같으며 미국과 등을 진다는 것은 한국에 엄청난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파병을 한다면 테러 위험이 있으니 딜렘마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한국군의 추가 파병이 현실화 되고 이라크 사태가 더욱 혼미해지게 될 경우 이라크 내의 한국군과 한국인이 테러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한국 내에서도 테러가 발생할 우려가 매우 크다. 그렇다고 파병을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한국은 이제 테러의 중심권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번 김선일씨의 피살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이라크 파병 방침을 재확인 했고 열린우리당은 “테러는 굴복의 대상이 아닌 응징의 대상”이라고 했다. 그렇다. 나라와 국민이 테러리스트의 협박에 굴복한다면 이 땅에서 정의는 사라지고 암흑의 세계만 있을 뿐이다.

김선일씨의 비극은 이 시대 한국이 겪어야 하는 비극이며 앞으로 더 큰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테러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테러를 응징해야 한다. 이제부터 한국은 테러 방지와 테러 근절을 위한 대테러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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