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받는 아빠, 인간적인 아빠

2004-06-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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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패밀리포커스 대표)

토요일! 정말 행복하고 기쁜 마음을 주는 날이다. 주말의 안락함으로 느끼는 그런 즐거움이 아니다. 그와는 정 반대다. 새벽 다섯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터로 나가는 남편, 그래서 세 딸들에게 근면과 성실, 땀 흘리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가르쳐준 아빠 덕에 약대 4년차에 있는 큰딸은 월그린 약국에, 대학 3년차의 딸아이는 유명 신발회사의 주말 파타임 아르바이트에, 11학년 막내는 SAT 1400이 목표라고 과외선생님에게, 엄마인 나는 교도소를 방문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청소년들 봉사프로그램인 SEED를 위해 양로원과 병원에 간다고 분주해하며 양쪽 화장실에 네 여자가 들락날락하며 샤워, 머리손질들... 그야말로 법석을 한참 떨고 나서야 집앞을 나서며 서로에게 ‘Have a good day!’ 하고 각자 자신의 일을 향해 씩씩하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면서 씨익 웃는 나 자신을 본다.그러자 늦는다고 내게 성화를 해대던 옆에 앉은 막내가 듣기만해도 기분 좋은 예쁜 목소리
로 “엄마 왜 웃어?” 하며 묻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응, 엄마 너무 행복해서... 오늘은 토요일이잖아. 그래서 조금은 풀어지고 게을러지고 싶은 날이잖아. 그런데 우리 식구들 봐, 저마다 바빠서 난리들이잖아. 그런데 그게 생산적이고 건전한 일에 바쁘잖아. 그런 딸들이 고맙고 대견하고 그리고 아빠한테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하고 기뻐서 그래”라고 했더니, 막내 왈 “그래 엄마, 맞아! 언니들은 아빠 닮아서 열심히 일해. 우리 아빠같은 사람은 없어, 그치?”하며 막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 예찬론이 또 펼쳐진다.

가끔, 연중행사같이 하는 부부싸움에서 엄마 표정이 심상치 않으면 막내는 넌즈시 다가와 “엄마, 아빠 미워?”라고 묻는 막내. “그래, 니 아빠 정말 미워, 엄마한테 섭섭한 말 했잖아?” 그러면 천사같은 얼굴을 가진 막내는 눈을 아래로 떨구며 “난, 아빠 좋은데... 아빠가 엄마 좋아서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면 11학년 아이같이 않은 천진난만함에 그만 웃음이 나고 만다.

이렇게 열렬히 아빠 팬인 딸들을 보면서 나는 때로 내가 점수를 좀 더 따야 하는거 아닌가 싶게 불안(?)할 때가 있다. 실은 솔직히 말하면 내 가족에게 나는 나의 일을 우선으로 하는 이기적인 엄마로 살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때때로 내 표정과 태도에서 심기가 불편한 것을 드러내면 아이들이 당황할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음이 넓은 남편은 “얘들아, 우리가 엄마 투정을 안 받아주면 누가 받아주니. 바깥에서 온갖 일들로 스트레스 많이 받고 힘들거야. 그런
데 우리가 그걸 안 받아주면 엄마는 누구한테 가서 해. 엄마 돌아버리면 안되지?” 하면 아이들은 “그래 맞아, 아빠. 우리가 엄마 투정 안 들어주면 누가 들어줘” 하면서 서로 눈짓을 하며 나를 보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면 나는 금방 성숙하지 못한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해지며 이내 마음이 풀어지고 만다.

단순히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상담자가 되어주는 남편이다. 솔직한 성격의 남편, 그래서 때로는 흥분을 잘 하기도 하는 남편, 그런 모습을 볼 때, 아이들이 “아빠 저럴 때 난 싫어”라는 표현도 가끔 받기도 하지만 늘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아빠다.

아이들과 의논이 되어서 세워진 약속은 철저히 지켜주는 아빠, 그리고 공공장소에서는 말없이 질서를 지키고 늘 모범적인 매너를 보여줘 미국인들이나 이웃에게도 인기가 좋은 아빠, 마카리나 댄스를 수많은 관중 앞에서 추기도 하고 교회 고등학생들이나 청년들과 배구와 농구는 지지 않는 실력으로 꼭 끼어드는(?) 동심을 가진 아빠다.

그러나 가끔 TV 스포츠 프로그램 때문에 악착같이 큰 화면을 정복하고 아이들을 작은 화면의 TV로 몰아내는 잔인성(?)을 보여주는 아빠를 아이들은 “아빠는 꼭 아기같애. 귀여워!” 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양보를 한다. 이유는 아이들이 아빠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세 딸들의 장차 결혼대상이 되는 남자들의 롤 모델을 꼽으라면 아이들은 똑같이 “아빠”라고 대답한다. 난 이 시간에 모든 아빠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고 싶다. 가정의 머리는 아빠이고 아이들의 정신적인 지주는 아빠인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고 완전한 아빠의 모습에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솔직한 모습의 아빠에게서다. 그들은 인간적인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영양가 높은 양분은 아내를 열심히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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