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증의 모국

2004-06-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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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롱아일랜드)

<모국,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
어느 시인의 한 구절을 잠시 빌렸다. 조국을 떠나 이민의 명찰을 달고 살아가고 있는 현장 속에서 정신없이 뛰다가도 문득, 문득 생각나는 것이 바로 모국이다. 그것은 우리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것 같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국민의 한결같은 마음의 바탕은 나라 사랑이다.마치 출가하여 자기 삶을 살면서도 미움 한 구석에는 떨쳐버리고 지워버릴 수 없는 친정이
있는 것처럼. 그 친정의 어두운 소식을 전해들으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뿐인 처지를 냉가슴에 묻지 않는가.


이처럼 우리 동포들은 태평양을 건너오는 기쁜 소식, 슬픈 소식, 즐거운 소식, 괴로운 소식들을 고달픈 늦은 밤이라도 반겨 기다리는 전송판을 통하여 웃고 울면서 하루를 이어간다.

오래 전에 IMF란 것으로 나라가 거듭날 때 없는 주머니를 털어 모국인 조국으로 쥐꼬리 보다 적은 주급의 일부를 송금하고는 어색하게 흐뭇했고 천재의 변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재민들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모금함을 들고 영세한 동포가게를 기웃거리기도 했었다.

정이 많은 동포들의 나라 사랑은 비단 조국 뿐만 아니라 굶주린 북녘땅에도 햇볕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돕고 있지 않은가. 비록 그 곳이 국제적 망나니라 할 지라도.근래에는 용천의 폭음에 놀라 또다시 주급을 쪼개고 있는 것이 동포들의 두고 온 내 사랑 조국에 미력이나마 보태려는 이민자 특유의 심정이다. 그곳에서 살지 못하고 떨어져 살고 있는 허전함, 소외감, 망향 등의 외로움이 모두에게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물질,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그리 넉넉지 않더라도 늘 모국으로 향한 별나지 않은 애국심이겠지.그런데 며칠 전 서운하면서도 기쁜 뉴스가 있었다. 7년여 동안 터무니없는 간첩죄(?)라 했던가, 참으로 억울한 누명으로 옥고를 치르고 가택에 묶여있는 로버트 김의 소식이다. 그는 영어의 몸으로 부친의 부고를 접하고도 달려가지 못하고 오열하였었다.

오늘은 가택연금이란 밧줄에 묶이어 모친상을 당하고도 귀국하지 못하는 그 심정을 누가 어떻게 이해하며, 위로하고 보상하겠는가. 처음부터 잘못된 구금을 해결해 주지 못한 모국을 뒤늦었지만 원망하게 된다.

이러한 분통 터지는 일로 모국이란 단어를 쓰지 싫어 그 어떤 나라라고 부르고 싶어 某國이라고 삼인칭으로 지적하고 싶다. 우리 정부는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母國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모 기관에 근무중 이미 비밀문서에서 일반문서로 하향등급된 문서를 외부에 노출시켰다고 해서 끔찍한 간첩죄가 적용되어 속수무책으로 구속되어 고초를 당하였다. 이 때부터 로버트 김은 외로운 싸움을 홀로 했어야 했다. 그는 그 문서가 모국에 어떤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전달한 것인데 그 행위가 위법이라며 미국 법망에 걸려든 것이다.


이 사건의 입법과정에서 지금까지 힘겨운 발버둥이 시작되었으나 모국 정부로부터는 적극적인 구명 움직임이 없었고 민간 차원에서 구원의 손길로 꾸준히 노력하였으며 이곳 동포들도 구명 탄원은 지속되었으나 판결을 뒤엎을만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그 죄의 경중을 떠나 그 행위가 국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재외의 동포도 국민이 아닌가. 파렴치한 범인도 아닌 그를 나라가 보호해 주어야 하지 않나. 몹시 서운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우리는 날로 발전해 가고 있는 자랑스런 조국에 대한 해바라기로 만족을 해야 하는가.

나는 외교니 정치니 하는 국제간의 채널은 잘 모르지만 재외의 자국민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익히 보아 왔기에 더욱 서운하다.몇몇 대통령이 다녀갔지만 입은 벙긋도 못하고 Good Guy로 후대(?)받고 방문 목적이 달성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도 모르고 귀국한 지도자가 밉다.

너무 하찮은 일로 머리를 조아리고 싶지가 않았나. 아니면 더 큰 무엇을 얻기 위해 말문을 못 열었나, 그것도 아니면, 늘 동반자 관계라고 하면서도 초면에 너무 경색된 좌석이었나. 다 지나버린 일이지만 아직도 밉기는 매 한가지다. 밉다는 것 자체가 모국에 대한 불변의 사랑에 도리질을 못하는 괴로움의 갈등이 애증으로 혼란케 한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으로 로버트 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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