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눈 가리고 아옹

2004-06-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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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편집위원)

불교 경전인 <우바새계정>에 ‘장사를 하고 재물을 모으되 계량기를 속여서 팔거나 그것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다면 죄가 된다’는 말이 있다.
또 <백유경>은 ‘장사하면서 온갖 법답지 않은 일을 하니 일은 비록 성취하지만 그 이익은 손해를 보충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미래의 세상에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마치 두 눈알이 빠지는 것과 같다’며 그릇된 상도의를 꾸짖고 있다.

<분별업보경> 역시 ‘말(斗)과 저울로 남을 속인다던가, 마음은 악하면서 말(言)만 착한 체하여 언행이 성실치 못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이는 양심불량 상인들이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한인사회에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얄팍한 상술로 고객을 골탕먹이는 이들이 있다. 양심불량 업주들이 바로 그들이다.속임수 판매나 얄팍한 상술은 한인업종의 구분이 따로 없는 듯하다.

버젓이 간판을 내건 병원 또는 한의원에서 자격이 없는 돌팔이(?) 의사가 진료를 한다. 동양식품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물건을 팔고. 식당이나 술집에서 먹고, 마시지도 않은 것들이 계산서에 포함된다.

계약할 때와 달리 가격이 달라지는 자동차 판매업소도 있고, 고치지 않아도 될 부속을 고쳐야 한다며 부당 이익을 취하는 정비공장도 있다. 겉포장과 속 내용물이 다른 고기를 파는 정육점. 불량저울을 사용하는 가게. 양을 덜 넣고 포장 판매하는 업소. 공사비만 챙기고 중간에 도주하는 건축업자.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수수료는 꼭 챙기는 전문인들.

동종업소의 인력을 빼가고 가까운 곳에 새로 업소를 차려 출혈경쟁을 일삼는 업소. 그리고, 처음에는 잘해주고 믿을만하면 뒤통수치고 속이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만하면 또 다시 잘해주는 척 하는 얄밉도록 머리 회전이 빠른 양심불량 업주들 등등이 있다.

이처럼 아직도 한인사회에 불신풍조를 만연시키는 ‘양심불량’이 여전히 남아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업종은 다양하지만 양심불량 업주는 소수이다. 예전에 비해서는 양심불량 업주도 줄었고 한인 소비자들도 피해 예방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한인사회를 위해서는 양심불량 업주들이 먼저 무너진 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얄팍한 상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빨리 깨우쳐야 한다.

‘눈 가리고 아옹’이란 눈을 가리고 ‘아옹’ 해봤자 고양이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니, 결코 속여지지 않을 얕은꾀로 남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번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자기의 얕은 꾀에 자기가 빠져들어 망할 수밖에 없음이다.


조선후기의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통해 진정한 상인정신을 일깨워준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또 ‘장사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장사’라 하고 있다.무엇보다 ‘어떤 형태의 ‘옳은 일’은 크건 작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그와 반대로 어떤 형태든 ‘옳지 않은 일’은 크건 작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반드시 나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다’라는 말은 진정한 상인정신이 무엇인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양심불량’ 업주뿐 아니라 한인업주 모두가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한인사회의 ‘양심불량’은 단지 상도의를 무너뜨리는 업주들에게만 국한 된것은 아닐 게다.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한인사회의 공공의 적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옆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때문에 우리 모두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스스로의 양심을 꾸짖고 책망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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