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엔본부의 깃발들

2004-06-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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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유엔본부 앞마당에는 백 수십개의 유엔 회원국 깃발들이 하늘 드높이 나부끼고 있다. 그 가운데 태극기와 인공기가 있다.

노태우 정권이 내세웠던 으뜸가는 치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이다. 유엔 정회원으로 첫 본회의에 참석하여 행한 연설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동안 대한민국이 자리했던 저 유엔 옵서버석에서 유엔 정회원 석까지의 거리는 4미터입니다. 이 거리를 우리는 40년이 걸려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 박수 박수 박수 - 이제 남한과 북한은 유
엔 테두리 안에서 반드시 민족 통일을 이룩할 것입니다” - 박수 박수 -
지금도 내 눈앞에서 나부끼고 있는 저 태극기와 인공깃발의 주인공들은 세계 평화의 전당 유엔에 들어와서도 싸움만을 계속하고 있다.


유엔 정회원으로서의 황금같은 남북 투표를 단 한번도 통일을 위해 공동으로 발의하고 투표한 일이 없다. 단일민족으로는 슬픈 일이요, 타 회원국이 볼 때는 한심한 희극이다.

조선민족 역사기록 2000년 동안 1,000번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헤어져 살기를 거부하던 이민족이, 분단 60년에 지쳐 행여 두 집 살림을 체념한 것이나 아닌지!

유엔본부를 지척에 두고 태극기와 인공기를 시도 때도 없이 바라봐야 하는 뉴욕동포의 가슴은 원통해서 미어진다.한국전쟁의 날 6.25가 다가오고 있다. 6.25를 상기하고, 6.25를 잊지 말고 6.25를 증오하라고 절규하며 살아온지 54년! 이제 6.25를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나는 생각한다. 특히 통일 독일과 통일 월남 앞에서 말이다.

한국전쟁 이후 조국 대한민국에는 군사문화 그늘에 가려 전쟁문학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남북 200만이 죽고 1,000만 이산가족을 내고도 전쟁문학이 없는 죽은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노벨문학상을 몇 개를 받아도 남을 문학적 소재가 넘쳐흐르는 한국전쟁이었는데도 거기에는 ‘전쟁과 평화’도 없었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없고, ‘무기여 잘 있
거라’도 태동할 여지가 없었다. 군사문화의 저승길의 사자 반공법이 싹수를 봐가며 짓밟아 버렸기 때문이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조정래 작)’은 가히 전쟁문화를 이 땅에 일깨운 선구자적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댓가로 작가 조정래는 10년 동안 반공법과 법정투쟁을 겪어야만 했다. 6.25전쟁은 조국 통일의 최대의 걸림돌이다. 이 걸림돌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군사문화를 대중적 전쟁문화로 승화시켜 통일 전쟁문화로 발전시켜 나가는 길 뿐이다. 벌써 이런 전쟁문
화운동의 물꼬는 트이고 있다.

영화 ‘실미도’가 그렇고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렇다. 그리고 많은 전쟁문학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시대적 사태를 이름하여 6.25 세대가 감당하기에는 정신적 부담이 크리라고 본다.

나도 6.25 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러나 6.25세대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민족분단이라는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38선을 국경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조국의 역사적 주역 386세대는 역사 유산으로서 민족분단을 결단코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통일세대라고 자부하고 있다. 이것은 수구는 보수로, 보수는 진보로 줄기차게 발전해 나간다는 역사의 필연이다.

역사는 분단세대에서 통일세대로 그 주역이 넘어가고 있는 오늘의 준엄한 현실 속에서 일제 식민지 세대, 6.25세대, 군사독재 세대는 수구적 아집이나 보수적 집념, 나아가 노욕이나 노탐에 사로잡혀 386세대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조국의 386세대는 그 뿌리를 4.19혁명에 두고 군사독재를 온 몸으로 거부하고 민주화투쟁 속에서 뼈가 영근 똑똑하고 알찬 젊은이라
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한 발 한 발 서서히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유엔본부의 남북 깃발이 하나 되는 날, 뉴욕동포들은 함마슐드 광장에 모여 덩실덩실 춤을 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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