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재미한인과 한미관계

2004-06-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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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우리의 마음이 즐거울 때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흥이 절로 난다. 반대로 우리의 마음이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듣게 되면 슬픈 감정이 더욱 복받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별한 사람은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뼈저리게 슬퍼하고,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은 부모를 그리는 노래를 들을 때 가슴이 찡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느낌은 같은 처지에 있을
때 같이 느끼는 것이므로 이것을 공감이라고 하고 공감을 갖게 하는 매개를 공감대라고 한다.

정서적인 감동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공통의 관심이 있어야 이야기가 잘 통한다. 예를 들어 취미생활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온통 화제거리가 골프 이야기인데 골프를 즐기는 사람끼리 골프이야기를 할 때는 골프를 치는 것만큼 즐거워 한다.


또 야구를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사람들과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전혀 이야기가 통하지 않게 된다. 요즘은 주로 여성들 사이에 인기 드라마가 화제거리이므로 드라마를 안 보면 화제에 끼어들지도 못하기 때문에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렇게 입장이 서로 같으냐, 갖지 않느냐에 따라 공감을 하기도 하고 하지 못하기도 한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처음서부터 끝까지 이야기거리가 장사 이야기이고 불경기 이야기이다.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어느 교회, 어느 목사, 어느 장로의 이야기가 주로 화제거리이다. 의사는 환자 이야기, 예술가는 예술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러므로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서로 분야가 다른 사람들과는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야기에 솔솔한 재미가 없게 된다.또 같은 분야라고 하더라도 서로의 입장이 다르면 공감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주인과 종업원은 그 입장 차이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입장에 따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지 못한다. 요즘 말로 코드가 같다 또는 다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감대란 바로 동질성을 말하며 동질성이 있을 때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살면서도 처음에는 마음이나 생각이 한국에 살던 때와 거의 다름이 없다. 그래서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에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때도 있다. 자동차로 멀리 여행을 하고 뉴욕에 돌아올 때 뉴저지 턴파이크에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맨하탄의 야경을 보면서 “서울에 다 왔구나” 하는 사람도 있다.

시민권을 따서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나라”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미국에 오래 살아서 미국화가 되어버린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 동화되면서 한국과 동질성을 잃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미국을 아주 생소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한국에서 이미 미국에 익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학교에서 미국식 교육을 받았고 수많은 외래어 속에서 영어에 익숙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한국에 가도 생소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한국이 미국물에 너무도 많이 젖어있기 때문이다. 거리의 간판마다 영어가 있고 미국에서 쓰던 물건도 흔하게 널려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 한미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은 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국일보 본지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53%가 미군 감축에 불안해하지 않고 58%가 미국이 바라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미국도 또한 최근 일본과 유대를 강화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앞으로 한미관계의 변화에 대비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가 미국에 동화하면서도 한국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간에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한 동질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한미 두 나라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미국에 동화되는 재미한인들이 한국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더우기 얼굴만 한국인일 뿐 미국인으로 자라난 2세 시대가 되면 한국과 한국계 미국인의 관계는 전적으로 한미관계의 수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남북한의 동질성 회복을 부르짖고 있는 이 때 변화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이질화의 운명에 놓인 한국과 재미한인의 관계가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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