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른이 어디에 있는가

2004-06-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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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일(성은장로교회 장로)

어버이날은 올해도 한국에서 하나의 행사로 지나갔다. 미국에는 어머니날이 있고 곧 아버지날이 다가온다. 한 미국인 친구가 어머니날은 ‘10달러 데이’이고 아버지날은 ‘2달러 데이’라고 툴툴대는 소리를 아버지 날마다 중얼거린다. 시끄러워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 왈 집사람이 돈을 다 지불하니까 아이들은 엄마 주머니가 저희들의 금고이니 애
교를 펴야 용돈이 궁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신 용돈도 해결하지 못하니 아버지에게 아무리 애교를 피워도 한푼 생기지 않으니까 쓰지도 않는 스킨로션만 사다주어서 약장
에 꽉 찼단다.


이 친구 정말 잘 나가는 변호사 파트너로 엄청난 수입(?)이 있어도 착한 성품을 가지고 늘 쾌활하다. 한번은 뉴올린스에 함께 출장 갔을 때 주지사가 참석한 파티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모두가 놀랬다. 당시 루이지애나 주지사 에디 에드워드는 과거의 박동선씨와 절친한 친구였다고 자랑하면서 그와 함께 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한국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는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동포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모두 몸 사리느라고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지식과 경험은 나누는 가운데 배우고, 또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온통 자기 주장, 자기 생각만 내세울 줄
알았지 타협할 줄 모르고 전후 좌우 관계에 대한 깊은 사려를 할 수 있는 인내심 조차 없는 그런 추한 분위기다.

깡패 사회에서도 의리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피상적으로나마 우리는 알고 있다. 즉 선배, 후배의 순서와 줄서기 서열에 대해 엄격하다. 그런데 지도자라는 이들이 과거의 선배들에 대해서 까 뭉기면서 묘한 자신이 성숙된 인물로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인간이 누구도 자신이 완전하다고는 못한다. 그러나 선배나 어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상의할 수 없다면 불쌍한 인물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배울 것이 많지만 야사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한 예로 ‘고려장’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를 지게에 싣고 가는 아버지를 따라 가는 아들이 나무가지를 똑똑 자르면서 따라오길래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이 다음 아버지를 내가 갖다 버리고 올 때 길을 잃으면 안되니까 표를 해 놓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모든 사물이나 인간관계가 상생의 조건 안에서 이어져 알게 모르게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누구에게서 조언을 받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성경을 보면 솔로몬의 아들이 왕이 되어서 노인들의 충언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의 어린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그릇된 판단으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뼈아픈 내용이 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질서에 준비된 자와 준비 안된 자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밤잠을 설치는 위험한 형국이다. 그런데 한국은 내 밥그릇을 지킬만한 지혜가 상실된 것 같다. 우리에게는
지금 미군 철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선 살아야 한다.


석유파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지금 가라앉으려고 하고 있다. 2003년 한국이 석유수입에 230억달러를 지불했다고 하는데 13억 인구의 중국은 193억원을 지불했다. 우리가 무엇이 그리도 잘나서 자주국방 준비의 개념도 모르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외쳐대고 촛불시위를 하는지, 서울대학교를 10개 더 세워서 필요한 두뇌를 공급하긴 커녕 없애라고 떠드는 지식인(?)들을 무어라고 불러줄까 생각 좀 해 보자.

지도자의 기본 덕목은 겸손과 화평케 할 수 있는 수양이 앞서야 한다. 과거의 원한이나 원통함을 간직한 한 많은 이조시대의 여인들도 여인의 덕목을 지키기 위한 슬기가 있었다.

과거에 자주국방을 위해 애쓰다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절규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당당한 한국의 모습, 세계가 다시 한번 배우려는 한국의 단합되고 포용하는 모습을 바라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조국, 슬기로운 젊은이가 마음을 열고 세계를 품안에 안아주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 이것은 바로 자식을 둔 모든 아버지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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