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의 자존심 고구려를 지키자!

2004-06-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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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애(고구려연구재단 추진위원)

아직 중국과 문화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던 90년대 초 나는 관광차 중국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나는 백두산도 가볼겸 중국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백두산을 거쳐 고구려 옛 도읍지 집안시를 방문하여 고구려 고분 5회분 4호묘(절대 미공개 묘)를 관람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벅차 환호성과 함께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온세계인이 감탄과 탄성을 올리고 있는 로마 바티칸 성전의 벽화와 점성화 보다도 훨씬 옛날 1,500여년 전에 그려졌고 전혀 보전과 관리가 허술하였음에도 영롱하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우리 국민 모두 더불어 관람하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고분 11개를 완벽하게 촬영하고 유물들을 입수하게 되었다. 1994년 12월~1998년 4월까지 경복궁에서 KBS와 공동으로 고구려 특별대전을 개최하였고 1995년 8월~1996년 2월까지 영국 대형 박물관에서 대대적인 고구려 고분벽화 대전시회를 개최하여 온 세계인에게 고구
려가 한국의 조상임을 알렸다.

그 얼마 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인편을 보내왔는데 집안의 고구려 벽화를 보수하여 재정비를 하고 유네스코에 문화유산 등록을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프로젝트를 위한 국제 학술회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한 경비 조달을 위해 정부 요로에 요청을 해 보았으나 ‘검토해 보겠다’고 하더니 감감 무소식이었고, 한 마디로 무관심사였다.

오늘날 중국이 부강해지면서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자칫하면 우리 소중한 조상과 역사마저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도 절대 방관할 수 없고 뒤늦게나마 고구려 연구재단을 발족하고 중국 동북공정에 당당히 대응하고 우리 조상과 역사를 꿋꿋이 지켜나갈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한 것은 2004년 1월 16일~18일에 파리 유네스코 세계유산 검토회의에서 중국과 북한이 제출한 고구려 고분벽화가 동시 통과되었으니 이번 달에 있을 중국 소주에서의 총회에서도 양측이 모두 통과되어 중국 북한의 고구려 문화유적이 동시 등제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는 점이다.

그동안 전시 준비를 위해 중국을 십여차례 방문하면서 중국 유관 이사들과 친숙하게 되었고, 공산주의 폐쇄정치체제 속의 어려운 벽을 뚫고 접근하여 유대를 돈독히 하면서 자료 수집에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가 접촉한 유관 인사들은 물론이고 중국의 어떠한 사람도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로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이구동성, 대하는 사람마다 당신네 나라(한국)의 조상 고구려! 그 훌륭한 문화유산! 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자명한 사실을 나는 증언한다.


1990년대 초 불과 10여년전 그 당시 중국의 경제는 정말 비참할 정도로 열악하여 대학교수의 월급은 불과 25달러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불과 10여년이 지난 오늘의 중국은 어떠한가. 아시아는 물론 미국의 경제까지도 능가할 기세로 급성장하여 경제부국이 되었다.

돈이 많아지니 욕심나는 역사도 빼앗아 보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동북공정” 듣기만 하여도 소름이 끼치고 역겹다. 그토록 당신네 조상, 당신네 역사, 당신네 문화유산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이제 와서 자기네 역사, 자기네 조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3조라는 엄청난 예산을 책정하여 놓고 유관 학자들은 동원시켜 역사왜곡 합리화 작업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정말 나는 기가 막히다 못해 말문이 막힌다. 그 당시 수많은 중국인들, 그리고 유관 저명인사들을 지금 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떳떳이 그리고 큰 소리로 “어찌하여 지금 와서
우리 조상 고구려를 당신네 조상이라고 거짓말 할 수 있단 말이요” 하고 소리칠 것이다. 고구려는 우리의 조상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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