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웰빙 유감

2004-06-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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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편집국 부국장)

요즘 한국사회에는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빠지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가 이 시대의 새로운 코드가 된 것이다.
온갖 식품과 가전제품, 아파트, 심지어 삶의 방식에도 웰빙이 따라 붙고있다. 하다못해 한국산업 디자인전람회의 주요테마가 ‘디지털과 웰빙’일 정도인데 실내공기 오염도 및 습도를 측정해서 저절로 가동되는 공기청정기와 가습기 등 웰빙 케어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삶은 생존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는 웰빙 라이프는 패스트 푸드를 멀리 하고 유기농 채소와 생식을 가까이 하며 피로를 풀고 정신건강에 이로운 아로마 테라피를 받는 등 몸과 마음에 좋은 것을 찾고 있다.


평일 퇴근 후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헬스 클럽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다양한 스포츠나 문화행사, 여행을 즐긴다. 세속적인 출세나 성공보다는 쉬어가면서, 놀아가면서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자는 이 ‘웰빙’ 이 껍데기는 건강을 내세우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지나친 물질의 풍요가 넘쳐나고 있다.키토산쌀이나 저칼로리면, 유기농 채소라는 것이 일반 제품보다 2배도 아닌 서너배가 비싸니 일반 서민들은 멀쩡히 잘 사먹던 콩나물이나 두부가 혹시 불량식품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울며겨자먹기로 비싼 유기농 채소를 구입하게 되고 가정경제는 더욱 힘들어 지는 것이다.

국가경제가 정상으로 가동되지 않아 신용불량자와 실업자가 길에 넘쳐나는 가운데 소수의 가진 자가 추종하는 웰빙은 거품처럼 보인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푼다는 빌미로 수시로 사우나, 스파를 즐기는 목욕 매니아들은 피부를 더운 열기에 장시간 수시로 노출하다가 피부병은 생기지 않을까, 너도나도 아로마 오일, 라벤더 오일을 사용하는데 그러다 없던 앨러지 생기는 것 아닐까 하는 염려도 생긴다.

그렇게 ‘몸 만들고 때 빼고 광낸 다음에는 무엇 할 건데’하는 의문도 생기고 이래저래 웰빙, 몸짱, 얼짱 만들기에 정신팔려 있다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 있는 친구는 자기네 신문사 건물 지하의 피트니스 센터에 아침저녁으로 30, 40, 50대 연령을 불문하고 기자들이 몰려들어 다들 몸 만든다고 난리란다. 밤과 낮이 없이 바쁘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신문사 기자들조차 웰빙 라이프에 동참했다는 것이 유행은 유행인가 보다.

한국에 이 웰빙 개념이 들어온 것은 2002년말부터라고 한다.반전운동가와 민권운동가의 정신을 계승한 중산층 이상 미국 시민들이 고도화된 첨단 문명에 대항해 자연주의, 뉴에이지 문화를 받아들였다. 이에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한 방법으로 요가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 ‘건강 우선’ 라이프 스타일이 한국의 여성잡지들을 통해 잘못 전달되면서 지나친 운동과 다이어트로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건강에 좋다지만 운동도 무조건 따라 해서는 안되는 것이 본인의 신체와 건강상태에 맞아야 한다.저체중인 사람이 결사적으로 웰빙 다이어트식과 웰빙 푸드만 챙겨먹다가 성인 하루 필요한 칼로리량을 섭취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하고 영양의 불균형으로 없던 병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껏 한국에서 유행했다 하면 미주지역에 상륙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는데 아직까지 뉴욕에는 웰빙 선풍이 불지 않는 것을 보면 한인들이 진정한 웰빙이 무엇인지 알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6.25전쟁 기념일도 다가오는데 한국인들은 ‘보리개떡’을 잊었나보다. 전쟁 후인 50-60년대에 식량이 부족하여 농가에서는 어른이나 애들은 허기진 배를 보리개떡으로 달래기도 했다. 도토리 찌꺼기에 밀가루를 넣어 반죽하기도 하고 밀가루반죽에 쑥을 넣거나 팥을 삶아 곁들이는 등 이름처럼 맛도 멋도 없는 ‘개떡’은 귀한 설탕 대신 단맛을 사카린으로 내었다.

한국은 과거의 아침 인사말 “진지 드셨는지요?”를 국어사전에서만 찾아볼 정도로 지금 경제가 안정되었던가? 오는 6월25일에는 잘못 이해된 웰빙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웰빙족들도 보리개떡 체험행사나 기아체험 행사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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