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금의 남한 정세를 보고

2004-06-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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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정순(원로성직자회 부회장)

며칠 전 서울에 한달간 체류하면서 남한 정세를 보고 몇가지 의아스러운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진보주의 정당을 자처하는 민노당은 드디어 8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국회의 일각을 차지하더니 연일 신문방송을 통하여 마치 국회 제일 야당이나 된 것처럼 떠들어대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이라크 파병 반대를 당론으로 주장하고 있다.


또한 진보 성향을 띄운 열린우리당도 국회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여 제 일당이던 한나라당을 몰아내더니 이 또한 국가보안법 개정안 상정과 이라크 파병 재고를 들먹거리며 민노당에 일부 동조하는 기세이다.

지금 남한은 실업자 문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유가파동 때문에 국민 한 가정당 카드 빚이 2만달러를 초과하여 비참한 가정 파탄으로 집단자살 사건이 속출하는 이 시점에 민생문제를 제쳐놓고 국가보안법 폐지 내지 개정 문제가 그렇게도 시급한 것인가?

북한에도 국가 보안법이 엄존한다. 보안법 외에 북한에는 형법에 반동죄라는 무서운 죄목이 있다. 이 죄목 때문에 누구도 입을 벌리지 못하고 꼼짝 달싹 못 한다.

북한 정권을 비판하든지 정책의 불평을 하던지 비협조적인 태도만 보여도 검거, 투옥하여 처형하고 있다. 일단 반동 죄로 입건 당하면 가족 면회는 물론 변호인과의 교통권도 박탈 당한다.변호인은 피고인을 면회하여 법적으로 도와줄 방도가 없다. 재판도 비 공개리에 비밀 재판으로 처형하고 일반인은 물론 피고인 가족의 방청도 허용되지 않는다. 비밀 재판이기 때문
에 어디에서 어떻게 처형 당하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다.

예수를 믿는다는 조건 하나만으로도 비밀 재판으로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평생을 영어의 신세로 죽어간다.필자는 서울 체류시 두 차례나 휴전선을 돌아보았다. 전선의 철조망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 헌병들은 총검을 들고 북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통일전망대 안에 북한의 사진을 보던 중‘지주 놈들’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저들은 같은 동족임에도 ‘지주’라는 두 글자에 ‘놈’자를 꼭 붙여야 속이 시원한가?

‘놈’이란 말은 자기네 적대계급을 표시하는 뜻이다. 저들에게 동포나 동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남한 동포들을 미 제국주의 반동분자 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서울에 와 보니 용천 폭발사건 돕기 운동으로 너도 나도 앞장서고 있다. 물론 동포를 돕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렇게 거족적으로 용천 돕기 운동에 남한 전 국민이 발 벗고 도와주는 와중에도 북한은 6자 회담에서 핵 포기를 거절하였을 뿐더러 남북 장관급 회담이나 장성급 회담에서도 핵 포기에대한 안건은 상정 조차 못하게 피해가는 현실이다.

비료나 식량이나 원조물자는 무제한으로 받아 먹으면서도 핵 개발과 생산을 계속해서 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렇다면 핵은 누구를 공격하기 위한 것인가? 남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면 누구를 공격하기 위한 핵 개발인가?


위의 두 정당은 먼저 북을 향해 북의 국가보안법 폐지와 남한 침투를 위한 게릴라 사단을 해체할 것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 연후에 휴전선의 철조망도 철거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니 개정안들을 상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두 명의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었다고 해서 연일 촛불시위 하며 반전 반미시위를 하더니 이제와서는 이라크 파병 반대니 미군 철수니 하며 노골적으로 반미 시위를 계속한 결과는 마침내 주한 미군의 이라크 파병, 주한 미군의 철수로까지 들먹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이는 자업자득이라고나 할까.

6.25 당시 미군 3만5,000여명 이상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하여 대한민국을 구원해 준 미국에 대한 대접이 이것인가? 배은망덕의 처사가 아닐까?

언제부터 북한은 우리 편이니 동족이니 하며 착각을 하고 있는가? 지주 놈이라고 하는 북의 소리를 들었는가? 그만큼 도와주었으면 식량과 비료와 의약품과 건축자재, 기타 막대한 물자를 지원해 주었으면 북한 정권은 이제는 남한 동족에 동족애를 깨닫고 회개하여 남한 인민과 손을 잡고 화해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북한은 남한에 대하여, 남한은 미국에 대하여 배은망덕하지 않았는지 곰곰히 생각하여 반성할 일이 아닐까?

보라! 2차대전에 패망한 일본은 미일 협력체제가 더욱 공고히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와 반대로 혈맹국가이던 한미관계는 어떻게 진전되어 가고 있는가? 남한의 정치인들은 심각히 반성하고 대처해 나갈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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