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한국문화 교육인가

2004-06-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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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세계 속의 한국문화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와 문명의 차이점을 알아야 하겠다. 이 두 가지 어휘의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문화는 철학에서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 향상하려는 인류의 이상을 실현시켜 나아가는 정신적 활동 Culture이고, 문명은 사람의 지혜가 열리고 정신적 생활이 풍부하고 편리하게 됨을 말하는 Civilization이라
고 설명한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예를 든다면 김치를 먹거나, 한글로 편지를 쓰는 것은 독특한 문화 생활이다. 우리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보편적인 문명 생활이다.


컴퓨터나 자동차는 아프리카, 한국, 미국… 어디서나 조건만 허락되고 조작 기술만 안다면 누구에게나 손쉽게 사용이 가능하다.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김치를 먹거나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한민족의 특수성이며, 컴퓨터
나 자동차의 사용과 같은 보편성은 없다. 다시 말하면 문명이 보편성, 일반성을 지녔다면 각 민족의 문화는 특수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진입하였고 얼마 더 있으면 선진국이 된다는 표현은 경제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결코 그런 표현이 타당치 않다. 지구상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이 가진 문화라 할지라도 거기에 우열의 등급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들 사이에는 오직 서로 다른 점, 차이점 만이 있을 따름이라는 표현이 옳다.

한국이 아직은 경제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지 못하였다는 매스 미디어의 표현에 익숙해져서, 한국문화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는 일이 있다면, 이는 착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뜻에서 우리의 독특한 문화가, 반만년의 역사를 통하여 세계 인류 문화史에 기여하고 있음을 자부하는 것이야말로 한국문화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역에서 한국문화 교육이 왜 필요한가. 한국의 초·중·고의 교육과정에는 ‘한국문화’라는 교과목이 없는 줄 아는데 왜 미국 각 지역에 있는 한국학교에서는 이 교과를 가르쳐야 하는가.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교육과정의 제정은 국가·지역사회·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차세대 교육 목표와 직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들의 생활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 내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풍요하고 독특한 한국문화 속에서 호흡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언어·세시풍습·행사·예술… 등이 모두 훌륭한 교육 자료이다. 학교에서는 그들의 체험을 중심으로 하여 학습을 진행하면서 인식의 심화(深化) 작용을 꾀하게 된다. 즉 한국이라는 나라는 독특한 문화가 가득 담긴 큰 그릇인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한국계 어린이들은 다양한 미국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목표를 세워서 의도적으로 계통적으로 ‘한국문화’ 교육을 해야만 한다. 즉 한국문화의 전수는 기성 세대의 의무인 것이다.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각 가정이나 교육기관에서는 반드시 한국문화 교육을 포함해야 하며, 이는 전통적인 생활문화 교육을 뜻한다. 한국적인 생활문화 교육은 생활 주변의 사물(事物) 관찰→내용의 이해→체험→생활화→새로운 문화 창조로 이어지도록 목표를 세우고 체계화 시켜야 한다. 가능한 한 이론에 머물지 말고 직·간접의 체험을 시킴이 요구된다.

한국문화 교육의 목표는 문화 속에 녹아있는 선조들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한국계 미국인임을 자부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한국문화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린이들이 미국의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이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인정하고 사랑할 때, 다른 사람이 가진 것도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나아가서 거주국의 좋은 시민이 되는 길이 된다.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일은 전통적인 한국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지 않는다면 급격한 속도로 소멸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예는 세계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불란서의 어느 분이 말하였다. ‘세계의 어떤 문화든지 소멸된다면 그것은 인류史의 큰 손실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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