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언제나 크리스마스

2003-12-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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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크리스마스 언제와?”“12월25일이 얼마 안남았네.”25일이 지나자마자 아이는 또 묻는다.“크리스마스 언제 와?”“금방 지났잖아. 많이, 많이 잔 다음에 오지.”긴 겨울이 지나고 화사한 꽃들이 피어난 따뜻한 봄날 아이는 또 묻는다.“크리스마스 언제 와?”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때마다 아이는 크리스마스가 언제 오냐고 묻는다.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는 얼음이 얼고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보다는 ‘징글벨’,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의 달콤하고도 신나는 캐롤,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예수, 금색 종과 칼라 볼·나팔부는 천사·화려한 인형 등이 장식된 반짝이는 트리, 그 밑에 놓인 화려한 포장지에 쌓인 선물들, 온 집안에 진동하는 맛있는 음식냄새, 하루종일 TV와 비디오 게임기
를 매만져도 혼나지 않는 날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아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북극에서 8마리 순록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온다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이다. 자루 속에서 나오는 선물은 산타가 어떻게 알았는 지 아이가 평소 가장 갖고싶던 것이고.그러니 아이의 마음은 매일 매일 ‘언제나 크리스마스’ 였으면 싶은 것이다.


비단 이 철없는 아이만 그럴까, 우리 어른들도 일, 돈, 건강, 앞날, 자식문제 등 모든 걱정과 염려 없이 그저 즐겁기만 한 어릴 적 크리스마스날로 돌아가고 싶다.

크리스마스 전날밤 벽난로가에 걸어둔 양말 속에 굴뚝을 타고 들어온 산타가 선물을 넣어준다는데 우리 어른들도 산타의 보따리에 듬뿍 담긴 보너스, 풍성한 갖가지 선물을 기대하는 것은 아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나이들어 생각하니 뚱뚱한 산타는 비만에 당뇨에 고혈압에 각종 합병증이 있을 것 같은데 오랜 세월 언제나 기분좋게 호호호호 웃으며 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흰수염을 길게 기르고 긴 고깔모자를 쓴 산타는 흰털 달린 빨간 옷에 검은 벨트를 매고도 불룩하니 나온 배를 다 감추지 못하는데 늘 웃고 살아서 장수하나? 나온 배와 상관없이 타고난 건강
체질인가?

그러면, 크리스마스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4세기에 로마는 12월25일을 ‘세상의 빛’ 예수의 탄생일로 결정했고, 현재는 이날이 전 세계적인 축제날이 되고 있다

미국은 19세기 초 펜실베니아에 이주한 독일계 정착민에 의해 크리스마스 트리와 카드라는 대중적 풍습이 파생되었고 한국에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크리스마스 문화가 퍼져나갔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인 중에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이전에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노는 축제로 먼저 알고 클럽 친교실이나 친구집에 모여 ‘올 나잇’을 해야 크리스마스를 잘 보낸 것으로 여긴 적도 있었을 것이다.

한인사회에도 연말 연시를 맞아 각 단체와 동창회, 친목회, 향우회 등에서 많은 모임을 갖고있다. 직장 망년회, 대학 동문회 송년의 밤, 골프클럽이나 향우회 모임 등 연말까지 매일 스케줄이 잡혀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한 번 모임에 나가보니 노는 재미가 보통 아니라 동창회고 사교모임이고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참석하다 보니 다음날 술병이 나고 일이 오전내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어른들도 놀 수 있다면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1년을 두고 크리스마스가 언제 오냐고 묻던 딸아이의 어릴 적 말을 떠올리며 그렇다면 엄마, 아빠가 다 돌아가신 ‘고아’ 어른의 산타는 누구일까 싶다.

요즘 내게 고맙게 해주는 사람이 바로 산타가 아니겠는가. 산타 할머니, 산타 이모, 산타 아줌마, 산타 아저씨 등등, 지난 한 해 내게 고맙게 해준 분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어릴 적 받은 선물 기억만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이다.

민병임(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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