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forgive와 forget it about

2003-12-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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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마지막 전후 3개월은 이민교회에서 가장 어려움이 많은 시기라고 한다.

특히 12월과 신년 1월은 각 교회들이 한 해의 예산과 인사를 다루고 재정을 결정하는 시기인데 그 결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잡음을 일으켜 교회마다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연중 가장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내부에서는 불협화음으로 시끌벅적한다고 한다.

힘들게 번 돈 교회에 헌금하고 나서 내 돈이 잘 쓰여졌나, 내 뜻이 잘 반영됐나, 아니면 내 직분이 잘 주어졌나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기대와 어긋나면 목사, 장로, 집사간에 의견이 충돌돼 평소에는 잘 지내던 사이가 금이 가 그 때부터 얼굴이 서로 붉으락 푸르락하거나 티격태격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질시하다 결국에는 파가 갈라져 헤어지는 사태까지 나오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온 날을 기리기 위해 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시기에 미움과 질시, 시기심 때문에 1, 2월에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나는 저 목사와, 아니면 저 교인과, 또는 저 장로나 집사와 같이 교회생활을 할 수 없다며 서로 등을 돌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말로 사랑과 화해, 용서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오히려 이 시기에 교회에서는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일반인들보다도 더 가슴속에 파묻고 잊지를 못하고 있다.

타인의 잘못이나 오랜 친구지간 또는 부모 자식간에 부부간에 어려웠던 일, 불편했던 일들을 지워버리지(forget it about) 못하고 마음에 꽁꽁 묶어두고 있다. 아이들도 보면 부모나 어른들이 자꾸 싫은 소리를 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강요하거나 하면 듣기 싫어 곧바로 ‘forget it about’를 내뱉는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잘못이나 약점, 험담 등을 잊어버려야 하는데 계속 마음속에 담고 있어 궁극적으로 용서(forgive)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교회가 용서를 부르짖어도 소귀에 경 읽기로 소용이 없는 일이다.
남의 잘못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느 누구와도 인간관계가 잘 이루어질 수있다. 그런데 한인들은 바로 이 ‘잊는 것’을 잘 못해 상대방을 용서하는 마음을 쉽게 갖지를 못한다. 남의 허물이나 잘못을 잊어버릴 줄 알아야 상대에게도 너그러운 마음, 이해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forget it about’를 하지 못하면 자식과 부모간에, 형제간에, 부부간에, 이웃간에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성경의 기록대로 사람들은 보통 내 눈에 들어있는 들보는 모르고 상대방의 티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나의 단점이 많은 줄은 모르고 남의 조그만 약점만 물고 늘어지려고 한다. 용서도 좋은 의미지만 성탄절을 기해 상대방의 모든 단점을 덮어주고 잘못을 용서하고 문제를 이해해주는 그런 ‘forget it about’ 마음이 절실하다. 이를 못하면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결국 이는 근본이 사랑이다.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교회에서 제일 많이 부르짖는 것이 믿음, 소망, 사랑이다.그 중에 제일 귀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12월은 바로 이 사랑을 실천해야 될 계절이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 안에서는 사랑과 거리가 먼 교인과 직분자, 목회자들이 종종 있는 모양이다. 교인끼리, 교인과 목사간에, 교인과 장로, 집사간에, 직분자들과 목사간에 사랑을 실천 못하면 이웃과 딴 교단, 타민족과 동종업자, 경쟁업자간에 어떻게 사랑이 싹틀 수 있겠는가.

나한테 유익하면 하는 사랑은 믿지 않는 사람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날을 찬양하며 그 분의 사랑을 기억하고 기리는 성탄절 시즌이다.의미가 깊은 이 절기에 외부에 사랑을 베풀지는 못할 망정 교회 내부에서 서로 미워하고 질시하고 시기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예수의 업적을 돌아보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증오, 잘못을 더 이상 들추기보다는 상대를 이해하고 감싸주고 포용하는 그런 사랑의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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