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기예수를 못 만난 동방박사

2003-12-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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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크리스마스를 몇일 앞둔 눈오던 날이라고 기억된다.

서점에 들려 몇 권의 책을 사고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눈길이 쏠린 것은 책표지에 큰 글자 제목이 “아기 예수를 만나지 못한 동방박사”였다.
아기 예수를 만나지 못한 동방박사라니 의아한 생각을 감출 수 없어 얼른 책을 펼쳤더니 문장력 좋은 헨리 벤다이크가 쓴 것이었다.

내용은 대강 이렇다.
천문학을 연구하던 동방의 박사들이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보고 감격했다. 큰 인물이 탄생한 징표라 깨닫고 동방박사는 각기 아기에게 드릴 선물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준비했다. 또 한 사람의 동방박사는 연보라색의 보석, 반짝이는 사파이어를 예쁜 상자에 곱게 포장하여 세 사람의 동방박사와 함께 별빛이 손짓하는 곳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저녁노을이 져가는 무렵 한 마을을 지나는 길 모퉁이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죽어가는 노인을 보고 지나칠 수 없었던 동방박사, 얼른 노인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정성껏 간호하여 회복되는 것을 보고 주머니 돈을 털어 치료비를 지불하고 총총걸음을 재촉했다.

아기에게 드릴 반짝이는 사파이어 연보라 보석을 가슴에 안고 베들레햄에 닿았을 때는 헤롯왕의 난을 피해 탄생한 아기는 이미 이집트로 피난 간 뒤였다.이집트로 숨가쁘게 달려가다 우중충한 촌락을 지나는데 헐벗고 병들어 굶주려 거리를 헤매며 손 내미는 사람들을 보고 제사장들 처럼 모른체 하고 지나갈 수 없었던 뒤처진 동방박사, 아기께 드릴 보석을 팔아 굶주린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돌보며 헐벗어 추위에 떠는 자를 입히고 땀 흘리는 동안 촌락은 아름답게 변해 갔으니 곳곳에서 건강한 웃음의 꽃이 피었다.

손을 흔들며 눈시울을 적시는 정든 사람들을 뒤로 하고, 동방박사는 골고다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갔다.언덕 위의 예수는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니 그 피방울이 땅을 적셨다.헤진 옷에 찢어진 신발을 벗고 동방박사는 무릎을 꿇었다. 눈물을 쏟으며 주여! 부르짖었다.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동방박사를 바라보며 “내 이웃에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며 숨을 거두셨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동지 이갑이 신체 불구로 북만주 상명 여인숙에서 외롭게 신음하고 있을 때 도산은 약한 몸에 힘든 노동으로 땀흘려 벌고 부인은 삯 빨래로 애써 번 돈을 합하여 보낸 1,000달러러를 받고 이갑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문앞에 다가왔다. 배고파 추위에 떠는 자, 헐벗고 소외받는 그늘진 자들의 이웃이 되는 내가 되어야 겠다.

황재봉(도산사상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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