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3년 12월 15일, 한국과 미국에서는

2003-12-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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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미국에서는 지난번 추수감사절날 부시대통령의 바그다드 방문으로 떠들썩하더니 2주 남짓 후에는 그것보다도 더 충격적인 뉴스가 어제부터 방송을 통해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럴만도 했다. 이라크전쟁 발발 후 간단히 세계 전사에 남을만한 전과를 올렸지만 사담 후세인의 생사도 잘 모르고 날로 심해가는 게릴라 작전에 미군이나 연합군의 사상자 소식을 듣다가 사담 후세인의 생포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제였다.

미행정부나 이라크전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해 오던 사람들에게는 긍정적 효과로 생각할만도 하고, 반전이니 세계평화를 부르짖어 왔던 소위 평화주의자들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성과였다.


미국의 2004년 대선이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시기에 처음부터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던 어느 민주당 후보나, 전쟁 참전을 찬성했어도 하나의 시비꺼리로 전후 처리과정을 비판해 오던 많은 민주당 후보들이 곤혹에 빠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더구나 현재 선두주자라는 어느 후보는 북한의 안전보장을 해야 하고, 다자회담이 아니라 양자회담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 후보는 이제 어떤 목소리로 이슈화 할 지 궁금하기도 하다. 경제마저도 1차 중동전 때와는 달리 서서히 회복세로 돌아서고 2004년 전망으로 4.8%의 경제성장률을 내어놓는가 하면 다우존스 지수도 1만대를 넘어섰다.

경제와 안보와 외교전선에서 선점을 해 가고 있는 부시의 재선 가도는 현재로서는 필적할 만한 인물이나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전쟁을 반대하여 반미적 노선을 걷던 독일, 프랑스, 러시아도 이제는 전후복구사업에 얻을 것이 없는가 연구하고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보도는 국익이 명분을 우선한다는 철저한 정글의 법칙이 국제 외교상에도 드러나고 있잖은가.

한편으로는 여기서 비행기로 논스톱으로 가더라도 14시간이 걸리는 지구 저쪽에 있는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이 12월 15일에 일어났는가. 지난 10년을 가리켜 잃어버린 10년이라 칭하듯 설상가상으로 또 한 해를 보태려는지 못 해 먹겠다에서 시작되었다가 재신임을 받겠다던 날이 12월 15일이다.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위헌까지 들먹이고 있는데 대선자금으로 인한 최측근들의 구속 속에 야당의 10분의 1이라도 된다면 사퇴를 또 공언하고 있다. 정치인이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정치적이라 접어두자. 이런 와중에 묻혀버린 더 중대할 수도 있는 송두율 사건은 3개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별 말이 없다.

67쪽에 달하는 공소문을 읽어 보았을 때 삼국지를 읽듯 등장하는 인물, 사건이 어떻게나 많은지 그냥 한 마디로 줄여 요약해 버리면 송두율은 북한 공작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무리는 없을 듯 하다.

어느 미주한인 언론도 보도한 적이 있지만 그가 한국 입국 전, 플러싱에서도 한인들과 만났다는데 그 때 그 사람들은 송두율의 진면목을 몰랐던가, 많은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12월 15일, 한국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지난 대선과정에서 500억 정도 불법 모금을 했다고 기자회견 석상에서 발표, 사과한 뒤 대검으로 자진 출두, 8시간의 조사 후에 귀가했다. 감옥행도 각오하고 있단다. 학같이 살고 싶어 했고 대쪽같다는 법과 원칙을 중시하던 그의 이 모든 언행이 대한민국과 후배 정치인들을 위해서라도 마지막 봉사로 매듭을 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같은 날, 지난 정권들을 풍미하던 김윤환씨의 사망 소식은 권불십년을 생각케 하기 보다는 허망한 인간 삶을 더욱 생각케 하는 씁쓸함도 있다.거기다가 ‘재외교포’라고 칭해지던 어느 도지사의 탈당과 입당 선언은 메스꺼움이 확 치솟게 만들고, 고해성사니 감옥행이니, 천하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또 하나의 희생자가 발돋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한 하루, 2003년 12월 15일은 지나갔다.


방준재(청소년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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