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평범 속의 사랑과 행복

2003-12-15 (월)
크게 작게
행복은, 행복할 때는 모른다. 사랑은, 사랑할 때는 모른다. 세상 사람 중 태어나 매일 행복한 사람은 없다. 매일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순간마다 변하는 사람의 마음은 오늘이 틀리고 내일이 달라진다. 그리고 과거를 생각하며 행복했노라, 사랑했노라 말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이 지나 백발이 되어간다.

행복하다 생각할 때는 이미 그 행복의 순간은 지나가 버린 후다.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그 사랑의 순간은 지나가 버린 다음이다. 모르고 행복할 때가 정작 행복의 순간이다. 모르고 좋아할 때가 진정 사랑하는 순간이다. 행복도 사랑도 모두 지나가 버린다. 행복과 사랑을 움켜잡고 있을 자는 세상 아무도 없다.

부와 명예와 잘남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져버린다. 오늘 유명세를 타던 사람도 내일이면 추락한다. 오늘 무명이던 사람이 내일이면 유명해 진다. 그러나 그도 나이 들어 늙고 병들면 무명해진다. 유명과 무명, 무명과 유명은 세월과 함께 가고 온다. 그리고 오고 간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평범한 가운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생이 어쩌면 가장 행복할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이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저 하루하루 맡겨진 일을 말없이 하며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런 사람들은 욕심이 적다. 욕심이 적은 만큼 기대도 적다. 적은 기대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평범한 사람들은 가족 중심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이든 사업체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맡은 일을 하고 저녁이면 가정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하루를 맞으며 일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일상은 지루할는지 몰라도 그 일상 속에 행복이 있고 그 일상 속에 사랑이 깃 들어 있음을 이들은 안다. 아니 그것이 사랑으로, 행복으로 느끼지 못한다 해도 바로 그것이 사랑이며 행복임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이런 사람들은 역사에 남을만한 일은 못한다. 교과서에 실릴만한 일도 못한다.

세기에 빛을 남기거나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영웅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굴러간다. 이름도 빛도 없이 일상의 생을 유지하며 가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위해 살아가는 말없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안 한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평범 속에 비범이 있음을 그들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안다.

내가 아는 어느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꼭 같이 주말이면 골프를 치러 다닌다. 지금은 겨울이라 또 다른 운동을 하러 다닐 게다. 그것도 부부가 함께. 보기에 너무나 좋다. 이 부부는 둘이 다 직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종교생활도 한다. 종교생활도 아주 조용히 한다. 조용히 하면서도 많은 일을 맡아 한다.

이 부부를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인사회 어디에도 잘 나타나지를 않으니 그렇다. 자식들을 잘 키워 출가를 시킨 이 부부를 여름철이면 골프장에서 가끔 만나곤 했다. 언제라도 부부가 함께 운동을 즐기는 그 모습이 여간 행복해 보이지가 않는다. 그들의 얼굴은 평범하다. 그들이 사는 생도 지극히 평범하다.

이 부부의 행복을 나는 훔쳐본 것이다. 그들의 사랑을 나는 훔쳐 본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주중엔 각자 맡은 직장에서 말없이 일한다. 주말은 운동을 함께 하며 서로가 서로의 신뢰를 쌓아준다. 그리고 종교활동도 봉사도 조용히 한다. 그러며 함께 늙어 가는 이 부부의 평범한 모습 속에서 나는 그들이 가진 사랑과 행복이 평범 속에 있음을 훔쳐 본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일찍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새벽의 출근길 러시아워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힘이 이런 평범한 직장인, 평범한 사업인, 평범한 일상인들을 통해 이룩해 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국의 힘은 가정에서부터 나온다. 미국의 힘은 가족에서부터 나온다. 행복은, 행복할 때는 모른다. 사랑은, 사랑할 때는 모른다. 행복과 사랑을 느낄 때는 지난 다음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순간순간의 행복이다. 평범한 부부애 속에 사랑이 담겨있다.

김명욱(종교전문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