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2003-12-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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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달리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 해였다.

정초부터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치정에 의한 칼부림과 총격사건으로 한인사회가 피바다로 물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맨하탄의 한 호텔에서는 한인 여성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는가 하면, 뉴욕출신의 한 젊은 여성은 타주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음력설에는 뉴욕한인사회 한 여류인사가 철저한 사전준비 끝에 자살해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한국은 어떤가! 수능시험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수험생에서부터, 카드 빚에 시달리던 청년은 노부모와 함께 차에 불을 질러 일가족이 사망했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어느 젊은 아낙네는 세 자녀와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또 상관의 성추행 때문에 자살한 군인, 장애인 딸의 목숨을 스스로 거둔 한 아버지, 노사분규 현장에서 분신자살을 택해야만 했던
노동자들도 줄을 이었다.


올해는 따뜻하고 인간냄새 풍기는 기사로 지면이 가득 채워지길 그토록 바랬건만…개인적으로는 인자하기만 했던 친구의 시어머니도 올 여름 약을 먹고 자살해 충격을 줬다. 끔찍이 아꼈던 둘째 아들과 손자에게 손수 저녁까지 지어 먹인 뒤 남편에게조차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다.

자살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요즘 현대인들은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때때로 밀려온다. 너무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해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중·노년층보다는 청소년과 30대 미만 젊은이들의 자살이 특히 많은 것을 보면 너무 나약하게 키운 그들의 부모를 원망하고 싶어진다.

사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죽겠다’ `못살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정말 죽고 싶다는 뜻은 물론 아니지만 죽음에 대해 가벼이 여기는 자세는 이러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싶다.

올 한해도 누구에게나 인간관계, 불경기, 가정이나 직장문제 등으로 힘든 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그리고 보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신년을 맞도록 노력하자. 아무리 힘들어도 죽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정은 <특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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