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정크메일 홍수

2003-12-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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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통신판매의 시조는 1872년 시어즈의 프란넬 천으로부터 식탁보에 이르는 163개의 물품 목록이 인쇄된 종이 한 장이다.

한때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인기 있는 책은 시어즈 사의 카탈로그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캐털로그를 이용한 통신판매는 100년간 폭발적으로 번창하여 JC 페니, 랜드스 엔드, 시어즈 등을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오늘날 통신판매업자가 한번 우편을 보내는 것은 신문광고 10배, TV 광고 100배 정도 효과라고 한다. 그러니 소비자들에게 상품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통신판매업자의 사정이지 받아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처음이나 집안에 앉아서 사야할 물품의 카탈로그를 보는 것이 편했지 나중에는 넘쳐나는 우편물이 귀찮아질 것이다.

쓰레기 우편물 일명 정크 메일(Junk Mail) 중에는 초기 이민자라면 깜짝 속는 것도 있다. 긴급 주요자료 내재, 행운의 기회, 수상 축하! 등등 눈에 띄는 선동적 문구가 받는 이를 겁주고 놀라게 하고 기쁘게 했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된다.

많은 한인들은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대로 거짓 행운의 기회를 잡으려다 오히려 바가지를 쓴 일도 있었을 것이다. 덤, 에누리, 우수리, 떨이, 턱 등 공것 좋아하는 심리를 드러내는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한국말에 있는가. 나 역시 크레딧 카드사와 통신판매 사에서 보내주는 놓칠 수 없는 찬스에 혹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처음에는 각종 카드를 넣을 수 있는 근사한 가죽 지갑을 우송료만 지불하면 공짜로 준다고 하여 세 개나 주문했는데 정작 온 것을 보니 가죽 질도 좋지 않고 카드를 넣어도 자꾸 빠져나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주위 사람에게 제발 가지라고 해도 필요 없다고 거절당할 정도였다.

두번째는 소품을 넣을 수 있는 여행용 백이었는데 그 역시 몇 개나 주문했지만 정작 여행을 갈 때는 너무 작아 넣은 것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여 지금도 서랍 속에서 천대받고 있다.

세번째는 두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비상용 랜턴을 식구별로 네 개나 주문했는데 배터리를 사다가 끼니 잠시 반짝하고 불이 켜졌다가 이내 망가져 버렸다. 꼭 닫히지도 않고 선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엄청나게 싼 가격, 유일한 기회라는 문구에 현혹되어 여행용 잡지를 주문했는데 한 달에 한번 꼬박 꼬박 책이 오면서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그런데 세계 각국의 명승지로 한달이 머다않고 뻔질나게 여행다니는 팔자가 아닌 바에야 흑해고 지중해고 숨어있는 피서지나 해변가 정보가 뭐 필요하랴.


결국 1년만에 중지하자니 그것조차 힘들었다. 늘 통화중인 전화를 한 달간 시도하다가 나중에는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어 결국 배달 중지시킨 적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곳에 솔선수범 하여 내 주소나 이름을 준 적은 없다. 정크 메일 전문가들은 고도의 컴퓨터 테크놀러지를 이용하여 전문적이고 방대한 자료를 빼내어 고객이 속한 집단이나 자동차나 집 모기지 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연말연시가 되면서 각종 정크 메일이 우편함에서 쏟아지고 있다. 백화점 세일 카탈로그가 가장 많고 겉옷, 속옷 뿐 아니라 화장품과 바디제품, 선물용품 등 각종 카탈로그가 붐을 이루고 있다. 각 은행에서는 크레딧 카드를 신청하여 여행도 가고 평소 갖고싶던 값비싼 장신구도 사라고 유혹한다.

아파트 입구에 쌓인 이러한 정크 메일 뭉치를 볼 때면 지난 가을동안 기승을 부린 남가주 산불이 기억난다. 80만 에이커 정도의 임야를 태우며 얼마나 많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재가 되었을까. 환경보호론자 근처에도 못 가지만 그 때 온몸에 불붙은 나무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 안타까웠었다.

이번 연말연시에도 수천만 미국인의 가정에 정크 메일의 홍수가 시작되어 종이로 만든 안내장, 카탈로그 등 우편물 더미가 뜯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며 연간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소모되고 있다. 아무래도 보다 강력한 정크 메일 수신 차단방법 및 처벌법이 요구된다.


민병임<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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