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돼지와 암소이야기’

2003-12-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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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어느 때보다 연말분위기가 조용하다. 매년 12월이면 거리마다 넘쳐나는 캐롤송과 들뜬 분위기로 괜히 어깨라도 한번 들썩이게 했던 것과는 달리 정말 연말인가 할 정도로 조용히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연말이면 으레 늘어나기 마련인 사랑의 손길을 나누는 감동적인 소식도 들리지 않고 있다.너나 할 것 없이 불황이라 어렵다고 하다보니 불우이웃을 돕는 온정의 손길도 얼어붙었나 보다. 여유가 있던 사람도 자꾸 움츠러들면서 그나마 이어지던 주위의 온정마저도 줄어들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베품과 나눔을 망설이거나 미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흔히 사람들은 추운 계절이 되면 더더욱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사랑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하지만 사랑의 온정 베풀기를 행동으로 옮기기보다는 ‘이 다음에’ ‘좀더 여유가 있을 때’ 등의 생각으로 그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올해는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마음만 갖고 있을 뿐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간디는 “중요한 것은 행위의 결실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커다란 나무도 가느다란 가지에서 시작된다. 10층탑도 작은 돌멩이 하나씩 쌓아올리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을 바로 지금 세상 밖으로 실천할 수 있음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일부터 이렇게 하겠다. 다음에 해야지. 시간이 흐르면 차차 하겠다’ 보다는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겠다는 중요성의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바로 ‘돼지와 암소이야기’가 그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부자가 있었다. 그는 지독한 구두쇠로 소문이 나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아주 안 좋았다고 한다. 하루는 그 부자가 마을의 성인을 찾아가 물었다. “내가 죽은 뒤에 전 재산을 불쌍한 이웃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구두쇠라고 합니까?” 그러자 성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암소와 돼지이야기가 교훈이 되겠군요.
어느 날 돼지가 암소를 찾아가 불평을 늘어놓았답니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자네를 정 많은 친구라고 떠들어대지. 물론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냐. 자넨 사람들에게 우유를 제공하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나에게서 얻어 가는 건 그에 비하면 많아도 한참 더 많다네. 나는 내 목숨을 바쳐 허벅지 고기, 뱃살고기, 삼겹살, 정제한 돼지기름은 물론 심지어 족발까지 한두 가지인가. 그런데 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들에게 나는 한낱 돼지요 욕심꾸러기일 뿐이야.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암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나는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해 주고, 너는 죽은 뒤 해주기 때문 일거야.’>

이처럼 지금 작은 일을 하는 것은 나중에 큰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작고 하찮은 일이라도 지금부터 하나하나 해 나가는 사람만이 나중에도 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위의 불우이웃을 돕는 사랑의 실천도 마찬가지일 게다. 불우이웃을 돕는 나눔과 사랑도 나중으로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많은 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연말이다. 연말을 맞아 작은사랑의 실천부터 시작해보자.한 방울의 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듯, 작고 따뜻한 마음의 시냇물이 모여 더욱 크나큰 사랑의 강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요즘 아무리 불황으로 경기가 안 좋고, 먹고살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이런 때야말로 나눔의 정신, 소외되고 고통 중에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절실할 때다. 생각으로 그치는 사랑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 말이다.


연 창 흠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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