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아듀 2003!

2003-12-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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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탈을 쓴 계미년 2003년이 한국 국민들에게 만약 ‘재신임’을 물었다면 택도 없다라는 대답과 함께 소금세례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양처럼 평화스럽고 온순할 것이라고 믿었던 기대와는 달리 계미년은 전쟁과 질병, 천재지변과 대형 사고들로 얼룩진 한해였다.

새해가 사스(SARS)로 시작하더니 독감으로 마감됐고 한국은 폭풍 매미로 ‘물난리’, 미국은 샌타애나 바람으로 ‘불난리’에 시달렸다.

설날 아침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 대기권에서 폭발했는가 하면 대구의 지하철은 불길에 휩싸이고 스태튼 아일랜드의 페리는 부두를 들이받아 수십명의 사상자를 냈다.


조지 더브야(’W’의 텍사스식 발음) 부시 대통령은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명으로 사담 후세인을 오사마 빈 라덴의 ‘동굴 이웃’으로 전락시키는가 하면 ‘재신임’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전면전은 최병렬씨의 팔에 링거를 꽂았다.

연예인 이경실은 야구 방망이에 맞아 부부관계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야구 방망이로 먹고사는 이승엽은 그 어느 메이저리그 팀과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했다.

문제: 보고는 싶지만 사기는 아까운 것? 정답: 플레이보이 50주년 특집호. 문제: 보기도 싫고 사기도 싫은 것? 정답: 한국 연예인 누드집들.

계미년은 한국 재벌가에 있어서도 그리 순탄한 해는 아니었다.
SK의 최태원 회장이 회계부정 혐의로 쇠고랑을 차더니 현대의 정몽헌 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통일을 외치며 12층 아래로 몸을 던졌다.
삼성 가문의 며느리 고현정은 포르쉐 자동차를 타고 나갔다가 도난 당한 얼마 후 이혼했다.

서울 도시 한복판의 공중전화로 거짓 폭탄 테러 장난을 친 사람도 잡아낸 한국 경찰이 아직까지 김우중씨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가?

원숭이는 재빠르고 영리한 동물로 통한다. 다가오는 ‘원숭이의 해’, 2004년 갑신년의 원숭이는 과연 우리들의 마음을 재빨리 이해하고 많은 재롱을 피울까?


정지원 <취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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