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한글 간판 조심합시다

2003-12-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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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싱을 방문하면 미국이 아닌 한국의 한 동네를 방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상점들이 블럭 가득 모여있는 다운타운 플러싱이나 노던 블러바드 선상을 따라 베이사이드 지역까지 뻗어있는 가게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어로 된 간판과 광고, 현수막 때문에 한인타운이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특히‘오빠 어디가’, ‘돼지공주가 술 땡기는 날’등 한글로만 표현할 수 있는 문구의 간판을 보자면 향수병도 달랠 수 있고 친숙한 느낌이 들어 좋다. 바로 이런 이유로 뉴욕 한인이라면 플러싱이 친숙하고 편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이런 이유 때문에 지역 커뮤니티가 한인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배타적일 수도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얼마전 플러싱 노던 블러바드 선상 160가 근처에 들어선 대형 한국어 간판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철거를 주장하고 시의원까지 나서 영문 표기 없이 한글로만 표기된 광고 간판에 대해 시정부의 단속을 요구하고 나선 사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이 지역 한인들이 한글로만 표시된 덩치 큰 옥탑 광고 간판이 주변 환경 미화에 좋지 않다는 사실에 동감하면서도 영어 표기 없이 한글로만 된 간판이나 현수막을 지역 커뮤니티가 반발하고 나선 데 대해 ‘인종차별적’이라는 불쾌감을 표시했다.

지역사회에 영문 표기 없이 중국어나 힌두어, 기타 언어로 대형 간판이 들어서면 누구보다 먼저 철거 주장을 할 한인들이지만 정작 공격을 받은 데에 방어본능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일대 시의원들과 주 상·하원의원들이 영어 표기가 안된 간판 및 옥외 광고판 등에 대한 단속을 촉구하기 위한 대책반을 세워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전망이다.

시와 주정부 차원에서 법적 단속을 벌이게 되면 한글로만 간판을 표기하거나 규정에 맞지 않는 간판을 보유한 대부분의 이 지역 한인업소가 단속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우려된다.

영어가 익숙지 않아서 또는 한국어가 편하거나 더 친숙하기 때문에 한글로만 간판을 표기하거나 영어를 쓰더라고 규격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한인업소들은 빠른 시일 안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게 좋고 우리의 것이 좋더라도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옛말처럼 지킬 것은 지키고 융화되는 것이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휘경 <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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