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춘추] 또 응급실 뺑뺑이, 정부는 왜 있나
2026-05-08 (금) 12:00:00
김정곤 서울경제 논설위원
지난 1일 밤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30대 임신부에게 출혈이 발생해 태아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응급 상황이 벌어졌다. 산부인과는 충북대 등 지역 내 상급병원에 긴급 이송을 타진했지만 병원들은 모두 수용을 거부했다.
이후 응급 신고를 접수한 119 구급대가 전국 41개 병원에 연락을 취한 끝에 부산 동아대병원으로 헬기를 띄웠고 3시간 20분 만에 환자를 이송할 수 있었다. 긴급 수술로 임신부의 생명은 지켰지만 뱃속의 태아는 숨을 거뒀다. 2월 대구에서 조산 증세를 보이던 쌍둥이 임신부가 길에서 4시간을 허비하다 수도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태아 한 명을 잃었던 비극이 일어난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구급차로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생명을 잃는 ‘응급실 뺑뺑이’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역대 정부가 수많은 대책을 내놓고 예산을 투입했지만 응급실 뺑뺑이는 멈추지 않았다. 특히 이번 분만실 뺑뺑이는 더욱 뼈아프다. 이재명 정부는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을 지정하고 1곳당 16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24시간 분만, 고위험 신생아 진료’를 공언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응급 상황이 닥치자 정책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임신부 수용을 거부한 충북대병원은 충청 지역을 총괄하는 핵심 거점인 권역모자의료센터였다.
충북대병원이 환자를 수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부족 때문이다. 권역모자의료센터는 최소 4명의 산부인과 전문의를 확보해야 하지만 충북대병원에는 단 2명의 전문의뿐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이 있다. 응급실 뺑뺑이는 단순한 이송 체계의 문제를 넘어 지역·필수의료 생태계 붕괴가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점이다. 산부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현장은 혹독한 노동 강도와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 의료사고 시 짊어져야 할 형사처벌의 부담을 안고 있다.
의사가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기형적 구조에서 전문의들은 응급실을 떠났고 신규 지원자는 씨가 말랐다. 반면 수입이 높고 상대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는 ‘피안성정(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으로 의사들이 몰리는 현상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방치한 채 응급환자 이송 정보를 공유하고 모자의료센터라는 간판만 달아준다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응급실 뺑뺑이는 단순한 의료 사고가 아닌 국가 시스템의 부실이 낳은 결과다. 이송 체계 개선이나 수당 몇 푼 더 주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벼랑 끝에 선 필수의료 생태계를 살릴 수 없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사수해야 할 핵심 인프라다. 당장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대폭 강화해 필수 의료진의 형사처벌 부담을 줄여주고 생명을 살리는 고난도 의료 행위에는 파격적인 보상 체계로 지원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이고 시급한 책무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4년 야당 대표 시절 던졌던 “응급실 뺑뺑이, 정부는 왜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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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