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새벽, 보스톤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작은아들 가족과 함께 뉴헴프셔에서 있을 외손자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가는 중이다. 비행기가 공중에 떴다. 그리고 문득 결혼식에 입을 내 드레스를, 깜박하고 집에다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방문 옆 고리에 걸어두고 다른 짐만 챙겨서 떠나온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난감해져서, 아들에게 말했다. 잠시 후 며느리가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고 말하며, 보스톤에 있는 백화점에서 다시 사면된다고 위로한다.
드디어 6시간의 비행 끝에 보스톤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인너스테이트 93 길로 들어가서 딸이 사는 뉴햄퓨셔로 향했다. 끝을 모르는 숲속에 2차선의 아스팔트길이 매사추세츠로 이어져있다. 한참을 달려가니 인너스테이트 89 갈림길에 ‘앤도버’라고 표시되어있다. 옆에서 운전하던 아들이 “저길로 가면 앤도버로 가게되요” 한다. 아들은 하이스쿨 2학년 여름방학 때, 앤도버썸머스쿨에 갔었다.
나도 여느 부모의 마음이나 똑 같이, 아이들이 감수성이 강한 시절, 다양한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대학과 고등학교의 썸머스쿨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방학에는 앤도버나, 하바드대학의 썸머스쿨로 가서, 칼리포니아와 다른 환경과 문화를 체험하게 했다. 또한 한국의 어학프로그램에도 참석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집을 떠나 타지에서 바쁘게 지내는 시간이었다.
옆에서 묵묵히 운전하던 아들이 “저희 애들도 좀 더 크면, 엔도버로 보내려고 해요” 한다. 아들은 무심히 한 말이지만, 내겐 의미 있게 들렸다. 당시, 우리자신들의 다른 모든 것들을 외면한 채, 아이들에게로만 향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오늘 자기 아이들에게도 같은 길을 가게 하겠다는 아들의 말은 ‘썸머스쿨 참석했던 것이 좋았다’는 30여 년 전의 아들의 마음을 이제야 듣게 된 셈이다.
이너스테이트 93 숲길을 계속 달려가니, 오른쪽 길로 ‘다트머스 의과대학’ 표시가 나온다. 다트머스 의과대학에서, 오늘 결혼할 손자 크리스챤과 신부 메델린이 만났다고 했다. 이 고요한 환경에서, 역사와 지식이 숨결처럼 배여 있는 교정에서 손자와 손자며느리는 공부하고 사랑하고, 이제 결혼식을 올린다.
드디어 결혼식이 있을 호텔에 도착하니, 메델린의 엄마가 칼리포니아에서 온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반갑게 인사한다. 겸손하고 수수해 보이는 그녀는, 어린 딸을 정신과 의사로 키워낸 엄마이며 또한 동화작가라고 한다. 엷은 미소로 멀리 칼리포니아에서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조근조근 전한다. 또한 내가 결혼식 드레스를 잊고 가져오지 못한 것을 들었다며, 셰임이라는 내 말에, 자신은 젊었어도 프로그램 목록을 쓴 종이도 잃어버렸었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다음날 아침, 숲이 우거진 호수 가 딸의 집에서, 딸과 사위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온 가족이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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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