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구 박사를 추모하며
2026-05-07 (목) 07:58:40
정종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VA
지난 5일 전해진 이홍구 박사의 서거 소식에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20여년에 걸친 서울대 교수와 그보다 훨씬 긴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정치원로로서의 그의 삶은 남북 분단과 민주화 투쟁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 자체였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 유학 길에 올라 에모리 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1968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귀국했고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특별한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의 학문적 깊이와 참신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분단 극복에 대한 깊은 인간적 고민이 학생들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고인이 학계를 떠나 정계로 진출한 것은 87 민주화 선언 이후 출범한 노태우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이 되면서였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그는 여야가 공감하는 통일 방안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쏟았고 그런 노력의 결실이 한민족통일방안이었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통일에의 길로 공진하자는 게 핵심이다.
필자는 고인과 학계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오래동안 같이 일한 경험이 있다. 학계에서는 예일대학 정치과 후배와 서울대 정치학 교수로서 그후 정부에서는 통일 외교 팀의 일원으로서 필자가 누린 행운은 매우 각별했다.
필자가 서울대 교수로 일하던 때에는 한국에서 공산권 연구가 한창이었다. 백림 장벽이 무너져 통일 독일이 등장한 열기 속에서 한반도에도 비슷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펴졌다. 서울대에서도 공산권 연구소가 생겼다. 고인이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고 필자가 공산권 연구 책임자가 되어 많은 일을 함께 했다. 197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정치학대회에서 고인과 필자가 ‘통일의 변증법적 소고’라는 공동 논문을 발표한 것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 진 많은 공동 작업 중의 하나였다.
정부에서 일한 것 중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1994년 6월 남북정상회담 예비회담이었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한반도에서 전운이 고조되었던 김영삼 정부 초기 고인은 통일부총리였고 필자는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카터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고 그 결과 열기로 합의된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열린 판문점 회담에서 고인과 필자가 남측 대표로 참가했다. 결국 김일성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고인과 필자가 자주 만나 남북문제에 대해 많은 애기를 나누었던 시기였다.
필자가 고인을 마지막 만난 건 2년 반 전쯤 전 서을 국제포럼 사무실에서였다. 그 때 유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말들을 몇 마디 했다. 못다한 학자로서 그리고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원로로서의 고뇌와 회한이 서린 말들이었다. 그게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자 영원한 원로 영웅 이홍구 선배의 마지막 모습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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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