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창덕 전 뉴욕대한체육회 회장
▶ 한인 체육계의 성장·위기·재건 이끈 ‘실무형 리더’

전창덕 회장(사진)
▶1994년~2022년까지 월드컵 8회 연속 현장활동
▶11월4일 시티필드서 대규모 합동 응원전 준비 중
뉴욕 한인 체육계의 지난 40년을 돌아보면,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던 한 사람이 있다. 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했고, 누구보다 앞장섰던 사람. 전창덕 전 뉴욕대한체육회장. 그의 이름은 단순한 직책의 나열이 아니라, 뉴욕 한인 체육회가 지나온 길을 따라 새겨진 궤적이다.
그는 말한다. “운동은 사람을 모으는 힘입니다. 공동체의 얼굴이죠.” 그 말처럼 그는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체육의 현장을 떠난 적이 없다.

1996년 대한축구협회로부터 공로패 수여.
■ 운동이 인생을 바꾸다
전창덕 회장의 인생 출발점은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집안의 반대에도 몰래 축구를 시작했고, 그 선택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군 제대 후 “미국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1980년 LA에 왔다가, 다시 뉴욕으로 이동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뉴욕에서 그는 뉴욕대학(NYU)에서 무용과를 졸업한 부인 백지원 여사를 만나 결혼했고, 자연스럽게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발을 디딘 조직이 바로 뉴욕한인축구협회였다. 그곳에서 당시 국가대표 출신 선배들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운명처럼 축구와 체육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되돌아보면, 거의 반세기를 축구와 함께 산 셈이죠. 축구는 그냥 좋아서, 그리고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계속 걸어온 길입니다.”

[사진]
■ 1982년 체육회 입문-‘현장형 행정가’의 탄생
1982년, 그는 뉴욕대한체육회에 공식 가입했다. 그때부터 그의 역할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었다. 경기단체와 청소년 프로그램을 연결하고, 대회 운영을 맡고, 부회장·사무총장^수석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밟으며 조직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는 뉴욕 한인 체육회가 기반을 다지던 시기였고, 그는 “현장을 아는 행정가”, “실무형 리더”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 2013년 뉴욕대한체육회장 취임
2013년, 그는 정기총회 인준을 통해 뉴욕대한체육회장에 취임했다. 그가 내세운 목표는 명확했다. *가맹단체 결속 강화 *청소년 체육 확대 *성인·노년층 생활체육 활성화 *미주체전 경쟁력 강화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내부 결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체육회를 단순한 경기단체 연합이 아닌 한인 공동체의 플랫폼으로 재정립하려 노력했다.
■한인 스포츠 외교의 창구
전창덕 회장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록은 1994 미국 월드컵부터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8회 연속 현장 활동이다.
그의 역할은 다양했다. ▲동포 응원 준비위원장 ▲한국일보 월드컵 칼럼리스트 ▲월드컵 중계·해설위원 ▲월드컵 리포터 ▲2002 월드컵 홍보 기획위원장 ▲다민족 축구대회 기획단장
이 기록은 단순한 ‘축구 팬’의 열정이 아니라 한인사회의 국제 스포츠 외교 창구 역할을 해온 경력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2026 뉴욕·뉴저지 월드컵 한인후원회 공동회장으로 뉴욕한인회·뉴욕대한체육회·축구협회와 함께 대규모 합동 응원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 체육단체 경력- ‘조직가’이자 ‘원칙주의자’
그의 경력은 방대하다.
▲뉴욕대한체육회- 제17대 회장 부회장/ 사무총장/ 수석부회장, 미주체전 뉴욕대표 총감독, 미주체전 뉴욕대표 단장, 청소년·유소년 체육 기획본부장
▲재미대한체육회- 제16·17·19대 부회장, 정관 개정 위원장 *미주체전 상황본부장
▲축구 관련- 제18대 뉴욕한인축구협회 회장, 미동부 축구대회 총괄본부장, 뉴욕 키커스 어린이 축구교실 Head Coach , 뉴욕 호산나 축구단 창단
▲기타- 민주평통 9기 간사 , 민주평통 10기 체육분과위원장
이 모든 활동의 바탕에는 그의 철저함, 원칙주의, 빈틈없는 성격이 있었다.
■원칙 때문에 생긴 갈등, 그러나 결국 남는 건 사람
그는 인정한다. “제가 너무 철저해서 상처받은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땐 옳다고 나의 주장을 꺾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원칙주의는 때로는 다른 의견과의 사이에 갈등과 마찰을 낳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에게 늘 따라오는 그림자였다. 하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도와준 이들, 때로는 부딪혔던 이들에게도 모두 “고마운 분들”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결국 남는 건 사람입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주체전의 현장
50년 가까이 이어온 미주 체전은 차세대 청소년들에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미 주류사회 진출을 위한 당당한 자신감의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체전 초기에는 이민 1세들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준비되고 개최되었기에 불편함과 문제점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는 대회마다 늘 사무총장으로 뛰며 뉴욕 선수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겼고, 그 과정에서 갈등과 보람, 눈물도 따랐다. 전창덕 회장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본다. “그 세월이 너무 빨리 갔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보람은 컸습니다.”
■기억에 남는 추억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라면, 코리안 퍼레이드 때 맨하탄 브로드웨이 거리에 모인 외국인들에게 월드컵 홍보 활동을 펼친 축구 묘기에 대한 추억과, 2023년 뉴욕에서 개최된 미주 최대의 체육 행사인 전 미주체전에서 정책기획 단장을 맡아 대회를 총괄한 일이라고 그는 술회한다.
지금 그는 축구에서는 한 발 물러나 골프에 심취해 있다. 주변 지인들에게 무료로 레슨을 해주며 ‘주는 기쁨’을 느끼는 삶을 살고 있다.
뉴욕대한체육회에는 뒤에서 조용히 힘을 보태는 조력자로 남아 있다. “이제는 후배들이 잘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또 한번의 결집 준비
전창덕 회장은 ▲현장 중심 행정 ▲조직 결속력 ▲국제 스포츠 네트워크 ▲청소년·생활체육에 대한 꾸준한 관심 ▲원칙과 책임감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40년은 뉴욕 한인 체육의 성장과 위기, 재도약의 순간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온 기록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2026 월드컵을 앞두고 뉴욕한인사회의 또 한 번의 결집을 준비하고 있다. 그에 앞서 오는 11월4일 플러싱 시티 필드에서 LA팀과 뉴욕팀이 벌이게 될 미 프로축구팀 경기에서도, 월드컵 한인후원회 공동회장으로서 뉴욕한인회와 같이 티켓판매를 돕는 등 제반 준비에 열심이다. 그의 말처럼, “운동은 커뮤니티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2025년 전창덕 회장의 70회 생신 기념 파티에서 함께 한 가족. 사진 왼쪽부터 사위와 딸 다영씨, 손자 규민 군과 전창덕 회장, 부인 백지원 여사.
한인체육계에 큰 디딤돌⋯ 가정에서도 빈틈없는 성격
■ 전창덕 회장의 생업과 가족 ■
전창덕 회장은 체육계에서만 철저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정이나, 생업에서도 빈틈이 없었고, 모든 일에 철저하게 원칙을 지켰다.
그는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과 결혼한 딸, 그리고 손자 한 명을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가족이라도 잘못한 사람 편은 절대 들지 않는다”는 그의 빈틈없는 성격은 가정 안에서도 다름이 없었다.
맨하탄에서 20여 년간 세탁소를 운영하며 가정경제를 책임진 조직 안에서도 그랬다. 그 결과 그의 가정이나 사업체, 그리고 무엇보다 뉴욕 한인 체육계의 발전과 성장에 큰 디딤돌을 놓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지난 반세기 걸어온 체육회 활동을 돌아보며 “이제는 후배 체육인들이 모두 종목마다 열심이어서 앞으로 뉴욕대한체육회의 미래가 더욱 밝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다.
<
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