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영아의 문화산책] ‘슈만의 연가’… 170년 전 멈춘 시간, 끝나지 않은 사랑

2026-01-02 (금) 12:00:00 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 / YASMA7 대표
크게 작게
2026년은 슈만이 세상을 떠난지 170년이 되는 해다.

출판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슈만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법대에 진학했으나 냉정한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다. 그러나 강박에 가까운 그의 노력은 오히려 손가락 부상으로 이어져 연주자의 길을 포기해야 했고, 대신 멘델스존과 함께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되었다. 또한 평론과 저술 활동을 통해 슈베르트, 쇼팽, 브람스, 베를리오즈 등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슈만의 일생을 이야기할 때 클라라와의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슈만의 음악을 들여다보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결핍과 낮은 자존감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에게 완벽이란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이 보여질까 두려워 쌓아 올린 방어벽과 같았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의심하여 한 장르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완성보다 중단과 포기가 잦았다.


그는 베토벤을 존경함과 동시에 그 이후에 베토벤을 능가할 음악가가 나올 수 있는지,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완결보다 변화와 파편의 연속처럼 들린다. 갑작스러운 전조, 감정의 급격한 반전, 말할 듯 시작하고도 맺지 못하고 사라지는 마무리들. 이는 형식 실험이라기보다 끝내 확신하지 못한 자아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슈만은 불안정한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 사랑을 현실보다 음악의 언어로 먼저 배웠다. 클라라를 만나기 전 슈만에게 사랑은 결핍과 갈망이었다. <환상 소곡집>이나 <크라이슬레리아나>에는 구체적 대상보다는 ‘나를 알아줄 누군가’를 향한 절박한 마음이 담겨있다. 클라라와의 만남은 그런 슈만에게 현실적 사랑의 등장이자 동시에 자아의 증명이었다.

클라라는 슈만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노 교육자이던 비크의 딸이었다. 이미 천재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리던 딸이 슈만과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고 비크는 극심한 반대 정도가 아니라 슈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두 사람을 강제로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비밀리에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당시 슈만의 음악은 클라라와의 긴 이별의 시간 속에서 점점 더 집요하고 고백적이 되었다.

슈만은 베토벤의 기념비 기금 모금을 위해 쓴 <환상곡 Op.17> 마지막 악장에 베토벤의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An die ferne Geliebte)>의 선율을 인용했다. 이는 슈만이 클라라에게 보내는 가장 긴 연애편지였고, 그녀에게 헌정되었다. 그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슈만은 그녀에게 사랑을 전했고 그녀는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걸로 화답하며 사랑을 증명하곤 했다. 이 사랑에서 슈만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신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동시에 클라라를 잃으면 자신도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생겼다.

슈만은 비크와의 길고 질긴 법적 투쟁도 불사하며 20살이 된 클라라와 결혼했지만, 행복하면 할수록 그의 불안은 커졌다. 결혼 후 작곡한 <시인의 사랑>에서 슈만은 사랑의 기쁨보다 사랑 이후의 상실과 두려움을 노래한다. 슈만은 언제나 ‘사랑받는 나’보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운 나’에 집착했고, 그래서 그의 음악은 점점 내면적으로, 파편적으로 변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클라라는 슈만에게 구원이자 동시에 열등감의 증폭기였다. 사랑은 그에게 창작의 원동력이자, 동시에 자신을 무너뜨리는 균열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늘 ‘사랑을 원하는 자의 언어’로 음악을 만들었다.

슈만은 라인강에 투신한 이후 정신병원에서 2년간 요양하다 생을 마감한다. 지속적인 환청과 강박적 사고 속에서 그는 점차 자신을 통제할 힘을 잃어갔고, 의료진은 음악 활동과 가족 접촉을 포함한 대부분의 외부 자극을 회복에 해롭다고 판단했다. 사랑하는 클라라를 만나지 못한 시간은 슈만에게 이별이 아니라 존재감의 상실이었다.


그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고통을 토로하지 않은 채, 음악으로조차 말하지 못하고 서서히 꺼져갔다. 그렇게 그의 죽음은 ‘침묵’이 되었다. 슈만의 완벽주의는 빛나는 목표가 아니라 자존감이 무너질까 봐 세운 임시 구조물이었고 끝내 그를 지탱하지 못했지만, 그 불완전함 덕분에 우리는 그의 음악에서 나약한 인간의 얼굴을 마주한다.

어쩌면 슈만은 사랑을 잘하지 못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음악으로 기록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지금도, 사랑을 견디는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동행한다.

170년이 지난 지금도 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강박증은 그를 늘 불완전한 존재로 고통받게 했지만, 그는 슈만다운, 인간다운 마음을 음악의 언어로 우리에게 남겨 주었고, 그의 사랑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시간은 멈춰 있을 뿐이다.

<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 / YASMA7 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